연기자 빈곤의 서글픈 무대-산하의「적과 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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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9윌 20일부터 시작된 제2회 연극 절의 두 번째 타자는 극단「산하」의 제8회 공연 「적과 흑」(「스탕달」원작). 차범석 각색 표재순 연출의「적과 흑」은 한마디로 서글픈 연극-.
첫째로 작년「베케트」공연에서 극단「산하」는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대표적 극단중의 하나로서 관객의 기대를 한 몸에 모았었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는 그러한 조짐이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 연기자의 빈곤이었다. 처음 계획했던 출연자 교섭에 차질이 난 것도 안다. 그래서 이것은 극단「산하」의 잘못이라기보다 우리사회의 잘못일 것이다. 사회의 잘못일 뿐일까? 아니, 우리 연극인이 호약해서 그렇지 않을까?
둘째로 무대조건이다. 우리「스테이지·메커니즘」이 따라가지 않기 때문에 연극이 장면전환마다 중단될 뿐 아니라 장치는 노력에 비해 둔하기만 하고 따라서 조명이 살지 못했다. 의상은 애쓴 흔적이 역연했다.
셋째로「앙상블」이다. 종전의 연기자들은 거의 빠져서 무대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좋은 연극이란 역시 좋은 연기자만이 있어서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앙상블」이 이루어 질 때까지는 좋은 극단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해외문화단신으로 더 잘 알려진 「4계절의 사나이」는 영국 역사상의 대인물「트머스·모어」경을 주인공으로 한 비극-「로버트·볼트」원작 한상철 역으로 거의 4년만에「컴백」한 이기하씨의 연출이었다.
충분치는 못하나마 최소한의 예산을 가지고 있는 국립극단의 공연이라 우선 갖출 것은 다 갖춘 셈이다. 이런 관계로 국립극단의 경연은 언제나 다른 동인제 극단과는 다른 차원에서 평가되기 마련이다.
제일먼저 받는 인상은 대담한 장치다. 단순히 잘된 장치라는 뜻이라기보다 일가를 이룬「아이디어」요「데크니크」로서 우리 극계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일 작이다.
다음에는 대사. 연기자 대부분이 낮은 톤을 빠르게 얘기하기 때문에 무슨 소린지 알아듣기 힘들다. 장민호, 백성희, 나옥주씨 등 노련한 연기자를 제의하고는 의사전달은 단연 실패했다고 보아야겠다.
배우의 행동 선은 경쾌하고 다양하여 연출자의 기교가 담뿍 보이는 반면 무대가「토머스·모어」경의 비극을 얘기하기엔 가벼운 느낌이 든다.
「4계절의 사나이」는 비교적 근래에 보기 드문 좋은 공연인데 아무래도 출연자 전원의 능숙한 연기에도 불구하고「앙상블」은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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