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 국회의 '일본 규탄 결의안' 불발 코미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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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일본 각료 등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및 침략전쟁 부인 망언 규탄 결의안’이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오후까지 자리를 지킨 의원이 정족수(151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 70여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결의안은 일본 자민당 정권의 극우적 언행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각료·의원들이 황국(皇國)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등 일본의 심상찮은 우경화 분위기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낸 결의안이었다.

 그러나 국회는 결국 막 나가는 일본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 한마디 못한 꼴이 돼버렸다. 일본이 비웃을 일이다. 자리를 비운 230여 명의 의원은 그 시간에 도대체 얼마나 중차대한 일을 하고 있었나. 공교롭게도 4·24 재·보선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김무성·이완구 의원과 무소속 안철수 의원도 26일 등원 첫날 선서와 인사만 하고 자리를 비웠다. 첫날부터 본연의 역할을 잊은 건 아닌가. 물론 지역구에 당선인사 일정이 미리 잡혀 있었다곤 하지만, 국가적 사안과 지역구 관리 중 뭐가 더 중요한가.

 쇄신이다, 새 정치다 하는 요란한 구호 속에서도 의원들의 구태엔 변화가 없다. 이미 지난주 국회는 정부의 추가경정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지역구 선심예산을 끼워 넣느라 4300억원이나 증액하다 국민의 지탄을 받은 바 있다. 의원들의 눈엔 나라는 안 보이고 이권만 보이는가.

 국회의원들의 근무기강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면 긴박하게 돌아가는 국내외 정세와 경제여건에 어떻게 대응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핵 위협으로 시작된 한반도의 긴장은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고, 일본 극우파는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재무장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 와중에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한 추경 예산안은 의원들의 지역 이익에 볼모로 사로잡힐 판이다.

 이쯤 되면 의원들은 모이면 싸움박질 아니면 이권 챙기기나 한다고 손가락질 당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개혁의 칼날을 자초하기 전에 국회는 하루빨리 본연의 역할을 되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