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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출 문화재 ‘오구라 컬렉션’ 日, 60년대 초 일부 반환 검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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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호 01면

일본 정부가 1960년대 한일회담 과정에서 ‘오구라 컬렉션’을 한국에 되돌려 줄 것을 고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오구라 컬렉션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 기업인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1870~1964)가 한반도 전역에서 수집한 문화재를 가리킨다. 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후 ‘사유 문화재’라는 이유 때문에 한국에 반환되지 않았다. 그의 사후 아들 야스유키(安之)가 82년 도쿄 국립박물관에 소장품 전부를 기증했다.

본지, 62년 작성된 일본 외무성 문서 입수

27일 중앙SUNDAY가 일본의 시민단체 ‘한일회담 문서의 전면 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이하 모임)을 통해 입수한 외무성 문서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한국 측이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여겨지는 오구라 컬렉션 가운데 약간의 물건을 정부가 구매하거나, 또는 오구라의 자발적 의사에 기초해 기증하는 것’을 검토했다. 외무성은 또 가와이(河合) 문고, 데라우치(寺內) 문고, 양산 북정리 출토품 등에 대해 ‘현 단계에서 일단 (반환을) 고려할 수 있는 품목’으로 분류했다.

‘문화재 문제의 해결 방침에 관한 건’이라는 제목의 이 문서는 62년 2월 14일 외무성 동북아시아과에서 작성됐다. 모임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외무성으로부터 받아낸 것이다. 일제 강제 징용자 배상 소송을 진행한 최봉태 변호사는 “당시 일본 정부가 개인 소유인 오구라 컬렉션을 사들이는 수단까지 동원하려 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한국 측은 광복 직후부터 일본에 오구라 컬렉션의 반환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45년 10월 ‘진단학회’는 미 군정청을 통해 일제 강점기 때 약탈된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맥아더 당시 일본점령군 사령관에게 보냈다. 또 한국 정부는 제1~7차 한일회담 내내 오구라 컬렉션 반환을 의제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외무성이 문화재 반환에 관해 한국에 일정 부분 양보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부성이 강하게 반발했다.

문부성 산하 단체인 ‘문화재 보호위원회’의 입김 때문이었다. 이 단체의 핵심 인사인 호소카와 모리타쓰(細川護立) 등은 일제의 한국 문화재 반출에 직·간접으로 관여했다. 류미나 국민대 일본학연구소 연구원은 “문화재 반환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줄기찬 반환 요구와 일본의 전향적 검토에도 불구하고 오구라 컬렉션 1030점은 27일 현재 일본 도쿄박물관에 남아 있다. 상당수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외무성 문서에 언급된 나머지 반출 문화재도 일부만 반환됐거나 전부 일본이 소장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성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우리가 일본에 오구라 컬렉션이 불법적으로 반출됐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던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관계기사 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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