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모든 것이 실패한다 해도 최후의 버디가 남아 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20호 19면

지난 15일 (한국시간) 연장 2차전에서 마스터스 우승을 결정짓는 버디퍼팅을 성공시킨 뒤 애덤 스콧이 환호하고 있다. [AP]

벌써 열이틀이 지났지만 올 시즌 세계 남자골프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제77회 마스터스에서 그린 재킷을 입은 애덤 스콧(33·호주)이 고교 졸업앨범에 쓴 좌우명이 화제다. 호주 선수로는 처음으로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마지막 순간에 대한 예언처럼 들린다.

마스터스 우승, 호주에 사상 첫 그린 재킷 안긴 애덤 스콧

 그랬다. 정말 스콧은 ‘최후의 버디’로 ‘최후에 웃은 자’가 됐다. 지난 15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파72)에서 끝난 대회 마지막 날 18번 홀(파4·465야드)로 되돌아가 보자. 비가 내린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는 스콧의 극적인 역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17번 홀까지의 스코어는 8언더파. 스콧이 18번 홀에서 두 번째 샷으로 공을 그린에 올렸을 때 마지막 조의 앙헬 카브레라(44·아르헨티나)는 17번 홀 티박스에 있었다. 2009년 마스터스에서 정상에 올랐던 카브레라 역시 8언더파로 공동선두였다.

 스콧이 5m 가까운 거리의 버디 퍼트를 한 번에 넣으면 1타 차 단독 선두로 먼저 경기를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거리였다. 그 중압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공은 홀(컵) 왼쪽을 따라 반 바퀴를 돌다가 사라졌다. 전율을 일으키는 버디였다. 하지만 챔피언 조에서 출발한 카브레라는 만만치 않았다. 그는 이 홀에서 두 번째 샷을 홀 1m에 붙이며 버디로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그린 재킷을 입은 애덤 스콧.

 18번 홀에서 이어진 연장 1차전에서는 두 선수 모두 파 세이브에 그쳤다. 연장 2차전은 10번 홀(파4)에서 열렸다. 먼저 카브레라가 스콧을 압박했다. 카브레라의 3.5m 버디 퍼트가 훅 라인을 타며 들어가는 듯했지만 홀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파에 그친 카브레라가 아쉬움을 삭이는 사이 스콧의 퍼터를 떠난 공은 3m를 굴러 홀로 빨려들어갔다. 바로 그의 졸업앨범에는 이를 예언하듯 “모든 것이 실패한다고 해도 최후의 버디가 남아 있다(If all else fails, birdie the last)”라고 적혀 있었다. 1934년 제 1회 대회를 시작한 이래 단 한 명의 호주 우승자도 허락하지 않았던 마스터스에 새 역사가 쓰인 순간이었다. 스콧은 “내가 마스터스에서 호주 선수로는 처음 우승하는 운명이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낙담하고 좌절할 수 있는 위기가 많았지만 ‘모든 것이 실패한다고 해도 최후의 버디가 남아 있다’는 마음으로 쳤기에 18번 홀에서도, 연장 2차전 10번 홀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버디를 낚을 수 있었다.

 그는 “그레그 노먼은 나에게 영감과 신념을 줬다. 우승의 일부는 노먼을 위한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노먼은 세계 최고의 선수였고 호주의 상징이었다”고 자신의 영웅을 치켜세웠다. 그동안 호주 선수는 마스터스에서 일곱 번 준우승에 머물렀다. 특히 노먼은 86, 87, 96년 등 세 차례나 준우승에 그쳤다.

 스콧은 “언젠가 노먼과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모든 것을 돌아보고 싶다. 그와 맥주도 한잔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일곱 살이던 87년 그의 우상인 노먼이 마스터스에서 래리 마이즈(55·미국)의 기적 같은 칩샷에 무너지는 것을 가족과 함께 TV로 지켜봤다. 당시 노먼은 마이즈와 연장에 들어갔다. 노먼은 연장 두 번째 홀인 11번 홀에서 버디 기회를 잡았는데 마이즈가 그린 밖 45야드 지점에서 칩샷을 홀인(버디)시켰다. 스콧은 “정말 슬픈 일이었다. TV를 보던 엄마도 울었다. 그린 재킷은 그렇게 오래전부터 모든 호주 아이에게 정말 큰 의미였다”고 회상했다.

 노먼이 스콧에게 ‘영감’을 줬다면 그의 고교 시절 스윙 코치 피터 클라튼은 스콧의 골프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스콧은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애들레이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애들레이드에서 사우스퍼트 스쿨 10학년(1995년·한국 기준 고교 1학년)을 마치고 퀸즐랜드주로 거주지를 옮겨 쿠랄빈 인터내셔널 스쿨(TKIS)에서 고등학교 교육을 마쳤다.

 쿠랄빈 인터내셔널 스쿨은 퀸즐랜드주 브리즈번 국제공항에서 1시간10분 거리에 있다. 골드코스트에서는 1시간20분 거리다. 대도시는커녕 읍내에서도 한참 들어가야 하는 시골 학교다. 학교 이름은 쿠랄빈 밸리(Kooralbyn Valley)라는 지명에서 따왔는데 호주 원주민 언어로 ‘뱀 계곡’이란 뜻이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개설돼 있고 기숙사가 있는 국제사립학교였지만 전체 학생 수는 고작 250여 명 안팎으로 적었다. 스콧은 고교 시절 이 학교에 있는 ‘쿠랄빈 골프 아카데미’에서 골프를 배웠다.

 질풍노도 같은 청소년기에 그는 한동안 골프에 대한 흥미를 잃고 방황했다. 이를 지켜보던 클라튼 코치는 스콧에게 골드코스트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친구로 지내자고 권유했다. 그는 스콧에게 방 한 칸을 내주고 6개월 동안 함께 먹고 자며 학교에 다녔다. 클라튼은 스콧에게 친구이자 골프 스승으로서 인생의 나침반이 됐다. 멘털게임에서 문제가 많았던 스콧은 클라튼을 만나면서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신감 있게 경기에 임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스콧은 샷에 안정감이 생기면서 호주 아마추어 무대를 석권했다.

 쿠랄빈 밸리의 거친 자연환경도 스콧의 성공에 또 다른 중요한 이유다. 이곳에는 호주 전역을 통틀어 코스 난도가 25위 이내에 들 정도로 어려운 쿠랄빈 골프장(18홀)이 있다. 호주에서 골프를 배우는 주니어나 투어 프로를 꿈꾸는 선수들은 반드시 한 번쯤 다녀가는 인기 코스다.

 스콧은 연습에 임하는 자세가 남달랐다. 특히 아이언 샷 연습 방법이 특이했다. 쿠랄빈 골프 아카데미는 연습한 공을 선수 본인이 직접 주워야 하는 원칙이 있다. 아이들이 장난 삼아 나무 숲 등 엉뚱한 곳으로 공을 날려보내는 것을 막고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드넓은 연습장 구석구석으로 공을 날렸다. 하지만 스콧은 달랐다. 하나의 타깃 지점을 정해놓고 공을 쳤다. 300번의 샷을 하면 거의 300개의 공이 한 지점에 수북이 쌓였다. 그러나 스콧은 현재 미녀 테니스 스타 안나 이바노비치(26·세르비아·2008년 프랑스오픈테니스 우승, 2009년 세계랭킹 5위)와 연인 사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