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중대 조치 … 사형선고 받은 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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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서울 무교동에 있는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실엔 입주업체 대표 두 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두 손에 통일부 성명서를 들고 있던 A입주업체 대표는 “마치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 같은 심정”이라며 나지막하게 흐느꼈다. 북한에서 대화에 응하지 않으면 ‘중대 조치’를 취하겠다는 정부의 선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의류 제조업을 하는 그는 “조치가 나와 봐야 뭐라도 하지 않겠느냐”며 “그전까지는 지켜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23일째 조업이 중단되면서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업체들은 현재까지 피해액이 1조원을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업체 대표는 “현재 소비자가격 기준으로 30억원어치가 넘는 의류 3만 벌이 개성공단에 묶여 있다”며 “제때 공급받지 못하면 곧바로 재고가 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B입주업체 대표는 “오늘이 직원 10여 명에게 월급을 주는 날인데 법인계좌 잔액은 5000여만원이 전부”라고 말했다. 공과금과 이자를 떼고 직원 월급을 주고 나면 통장에 남는 돈이 거의 없다. B업체 대표는 “이달 말 원부자재 구입비 2억여원을 결제해야 하는데 막막하다”고 걱정했다. 그는 “지금은 (협력업체들이) 걱정 어린 시선으로 위로하고 있지만, 이들도 곧 자금 압박이 올 테고 그러면 모두 부도 위험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앞으로도 정상화가 어려울 것이란 비관론도 나온다. 개성공단의 앞날이 불투명해지면서 바이어들이 대거 발길을 돌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A업체 대표는 “우리 같은 하청 공장은 주문량과 납기 맞추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이런 일이 벌어지면 누가 선뜻 주문을 하겠느냐”고 탄식했다.

 하지만 입주업체들은 개성공단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한재권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정부가 고려하는 ‘중대 조치’가 주재원 철수 권고나 공단 폐쇄라면 이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며 “우리는 한결같이 재산권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재·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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