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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사선 넘은 김창선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갱 속에 묻혔던 김창선씨가 극적으로 구조되어 다시 인간 가족의 품에 돌아오게 되었다. 지난 달 22일 낮 12시 40분의 사고 돌발 때부터 치면 꼭 16일간, 3백 80여 시간 만에 이루어진 기적 아닌 기적인 것이다. 사신이 아물거리는 지하 4백척의 갱 속에서 거의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그 숨막히는 절망의 순간들을 극복해낸 김씨의 경우는 인간의 생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끈질기며,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가를 세계의 모든 인간 가족들에게 과시해준 산 기록으로서 전 국민과 전 인류가 함께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로 말려든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암흑의 땅 속에서 구출되어 지상에 소생한 김씨를 우리는 20세기적인 영웅의 한 상징으로까지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영웅이 죽었다고 하는 현대 사회에 있어 김씨의 경우는 인기 배우나 가수들과 같은 이른바「대중의 영웅」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확실히 전 인류의 연명에 대하여 한 가닥 희망을 안겨주는 영웅우화의 주인공이 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김씨가 그동안 겪어야 했던 절망과 의지와의 싸움은 문자 그대로 「한계상황」속에 갇힌 현대인이 그 절망의 장벽을 뚫고 광명된 미래로 약진하는 과정을 너무도 생생하게 암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사지에서 구출해낸 것은 그의 끈질긴 생명에의 의지이외에, 인간 이성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전화 등「커뮤니케이션」수단의 활용, 과학적인 구조작업 추진, 그리고 전 국민적인 성원에 힘입은바 컸던 것임을 상기할 때 비록 일개 광부의 몸일망정 그는 위대한 인간 교사요, 실존 철학의 대저를 남긴 학자보다도 더 위대한 공헌을 인류 사회에 끼쳤다고 해서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한편 김씨 구출의 극적인 보도는 이 밖에도 살벌하고 메말랐던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여러모로 밝은 광명을 던져주는 효과를 가졌으며, 아울러 수많은 교훈을 제시해주고 있음을 우리는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첫째,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해내기 위해 그 동안 사고광산의 업주와 그 동료 광부들의 희생, 그리고 거의 거족적으로 베풀어졌던 국민의 성원을 우리는 다시없이 존귀한 것으로 본다. 막대한 재산상의 손실을 무릅쓰고 한 사람의 광부를 살려내기 위해 전력을 다한 대명광산 당사자들의 희생적 헌신은 그것이 비록 언론 기관을 필두로 한 강력한 사회적 여론의 영향에 의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가장 높이 평가되어야 할 줄 안다. 따라서 진실로 국민의 생명의 존귀를 아는 당국자나 국민으로서는 이처럼 의로운 일을 위하여 사재를 탕진하다시피 한 한 업주의 인간애정신을 보답하는데 있어서도 결코 인색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이번 사고는 당연한 사고가 당연히 일어났던 한 실례에 불과하여 김씨의 경우는 서상한 바와 같은 갖가지 매우 이례적인 호조건이 기적적인 생이 가능했던 단 한가지 예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금년 들어 7월말까지의 광산사고 누계는 이미 3천9백45건, 사상자만도 4천1백 여명을 헤아린다는 총계는 오히려 이번 사건이 우리나라 광산업태의 실정에 대해서 전율적인 경고를 던져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난굴이 다반사 되다시피 하고 보안대책 또한 거의 전무의 상황하에서는 김씨의 경우처럼 기적적인 행운조차 바라볼 수 없는 극한 상황이 항상 전 국민을 위협하고 있음을 우리는 잠시도 잊을 수 없다. 당국과 업주 등 모든 관계자들의 근본적인 반성과 대책을 거듭 촉구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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