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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 한국 공업화" … 문부상 "적확하다" 맞장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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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3일 의회에서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침략은)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며 발언 수위를 한껏 높인 것은 아베 내각이 앞으로 역사 문제에 정면 대응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같다. 의회에서 아베 총리와 함께 답변에 나선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상은 질의에 나선 마루야마 가즈야(丸山和也) 자민당 의원이 “조선사를 연구한 하버드대 교수의 저서에 따르면 ‘일본의 압정은 동시에 사회변혁을 가져왔고(중략) 식민지이면서 공업화를 이뤄냈다’고 쓰여 있다”고 하자 “적확한 지적”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아베 내각의 기본적 철학은 “일본은 침략한 게 아니다”란 것이다. 아베는 지난해 8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둔 시점의 인터뷰에서도 “자민당이 정권을 잡으면 미야자와 담화(1982년)와 고노 담화(93년), 무라야마 담화(95년)를 모두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잘라 말했다. 세 담화의 중심에 흐르는 화두는 ‘침략’이기 때문이다. 82년 8월 일 문부과학성이 일부 교과서의 검정 과정에서 대한제국에의 ‘침략’을 ‘진출’로 수정하도록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를 시정하도록 한 게 미야자와 담화다. 아베가 이를 뜯어고치겠다고 하는 건 대놓고 이야기를 안 할 뿐 “침략이 아닌 진출이 맞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 정부의 한 소식통은 “아베 내각의 전략은 한·일 역사문제에 제3국의 학자를 집어넣고 공동연구를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의 일방적 주장에 휘둘리지 않는 객관적 방어막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날 아베 총리와 시모무라 문부과학상도 “제3자적 입장에서, 세계사관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취임 100일까지 안전운행을 하던 아베 내각이 강공 드라이브로 선회한 것은 70%를 웃도는 지지율을 등에 업고 “한국·중국에는 강하게 대하는 게 국내 정치적으로도 결코 불리하지 않은 상황”이란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가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뒤 접견에서 자신의 역사관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외교적 결례를 범한 것(본지 4월 23일자 1면)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행동으로 보인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이 23일 본지 기사를 크게 속보로 보도하며 일본 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아베 내각의 망발은 이날 하루 종일 계속됐다. 오전 8시10분쯤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한 자민당의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정조회장(정책위의장)은 외교장관의 방일을 취소한 한국을 겨냥, “(야스쿠니 참배 문제를) 외교문제로 만드는 쪽이 절대로 이상하다”고 공세를 취했다.

 오전 10시쯤 각의가 끝난 뒤 각료들도 마치 입을 맞춘 듯 공세적 발언들을 쏟아냈다. 21일 야스쿠니를 참배한 후루야 게이지(古屋圭司) 국가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장관은 “공인이냐 개인이냐 이전에 난 일본인으로서 야스쿠니에 참배한 것”이라고 했다. 신도 요시다카(新藤義孝) 총무상은 “나의 사적 행위가 근린 제국에 영향을 미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시모무라 문부과학상은 “제 외국(한국과 중국을 지칭)은 (야스쿠니 문제를) 제발 외교문제로 엮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각료들에게 내렸던 “외교 관련 발언은 일절 하지 말 것”이란 엄명은 23일부로 해제된 셈이다.

 하지만 아베 내각의 이런 태도는 일본 내에서도 우려를 낳고 있다. 아베에게도 결국 독이 될 것이란 비판도 상당수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이웃 나라들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한 때 아베 정권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높은 지지율 때문에 긴장감이 떨어진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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