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 '십상도' 다시 그린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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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창시자인 박중빈 대종사 십상도를 최근 완성한 한국화가 정승섭씨. “손재주가 아닌 화가의 내면, 종교적 영성이 그림에 담겨야 한다”고 했다. [사진 원불교]

불교에 석가모니의 일생을 표현한 ‘팔상도’(八相圖)가 있는 것처럼 원불교에는 ‘십상도’(十相圖)가 있다.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少太山) 박중빈(1891∼1943) 대종사의 일생을 그린 그림이다. 세상사에 큰 의문을 품었던 유년기부터 열반 장면까지 대종사 일생의 주요 고비를 열 장 화폭에 담고 있다.

 중견 한국화가 현림(玄林) 정승섭(73)씨가 최근 대종사 ‘십상도’ 열 폭을 완성했다. 꼬박 3년이 걸렸다. 30여 년 전에도 그는 ‘십상도’를 그렸었다. 2016년 성업(聖業) 100주년을 맞는 원불교 측의 요청으로 2010년 새롭게 제작에 착수했다.

 지난 16일 전북 전주시 대성동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왜 그는 선뜻 자신의 이전 작업을 지우는 일에 손을 댄 것일까.

 정씨는 대뜸 “그림이 그림만을 위한 그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화가의 소신, 철학, 내면의 정신세계가 그림 안에 담겨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그림이 갖춰야 하는 정신적인 부분을 ‘영성’이란 말로 요약했다. 불교로 치면 한 가지 대상에 몰입해 흔들리지 않는 마음 상태를 뜻하는 선심(禪心), 혹은 무심의 세계가 그림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런 회화 미학을 추구하는 정씨에게 종교화는 다른 어떤 장르보다 매력적이다. 이번에 정씨가 완성한 ‘십상도’ 밑에는 그림 제목과 설명이 붙어 있다.

 가령 ‘십상도’의 다섯 번째 그림인 ‘장항대각상(獐項大覺相)’은 소태산 대종사가 26세 되던 해인 1916년, 우주와 인생의 비밀을 문득 깨친 장면을 그린 것이다. 원불교가 처음 시작된 날이다. 대종사의 인생역정은 물론 원불교의 핵심 교리가 ‘십상도’에는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정씨는 “30년 전 ‘십상도’는 그림의 기운은 좋은데 어딘가 깊은 맛이 부족해 늘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말했다. “30대 후반의 미숙함이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그려 보지 않겠느냐는 원불교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다”고 했다.

 정씨는 1940년 강원도 철원 북쪽 평강군 복계리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동고를 거쳐 서울대 미대·대학원을 졸업했다. 원광대 미대 교수, 국전 운영위원장 등을 지냈고 현재 원광대 명예교수로 있다.

 정씨는 “대학 시절 불교 경전인 『금강경』 『육조단경』 등에 심취했다”고 했다. “특히 『금강경』의 한 구절, ‘凡所有相(범소유상) 皆是虛妄(개시허망) 若見諸相非相(약견제상비상) 卽見如來(즉견여래)’를 처음 접하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모든 모양 있는 상은 허망한 것이니 모든 상이 상 아닌 줄 알면 곧 여래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이력 때문에 정씨는 자연스럽게 원불교에 입교했고, ‘십상도’를 그리게 됐다.

 다시 돌아온 ‘십상도’. 그에게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다.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그에게 그림과 수행은 동의어였다.

 “죽을 때까지 그려도 뭔가 부족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게 그림이죠. 기회 되면 다시 그리고 싶습니다.”

전주=신준봉 기자

◆소태산(少太山) 박중빈(1891∼1943)= 유년 시절부터 우주와 인간에 대한 의문을 품은 끝에 26세 되던 1916년 4월 28일 새벽 큰 깨달음을 얻고 원불교를 창시했다. 깨달은 이후 다양한 종교의 교리를 연구해 불교에 바탕을 두되 생활 속 신앙실천을 강조하는 원불교 교리를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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