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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엌에도 양성 평등을

중앙일보

입력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었다. 이제 한국인이 다 됐다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러나 아직도 납득이 가지 않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집안일을 누가 하느냐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주부는 물론 맞벌이 여성도 집안일을 다 맡아야 하는 문화가 있다. 젊은 세대들은 많이 다르다지만 그야말로 돕는 수준이고, ‘집안일은 곧 내 일’이라는 의식은 없어 보인다. ‘남성우월주의’로 볼 수 있다.

 중국은 다르다. 필자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내 식사를 챙겨줬고, 결혼 30여 년 동안 자신의 옷 세탁을 엄마에게 맡겨본 적이 없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고등학교 동창 10여 명이 친구 집에 모인 적이 있다. 그때 부엌에 간 것도 남자 동창생들이었다. 그들은 조를 나눠 점심식사를 준비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필자였기에 한국에서 접한 남성우월주의에 아직도 적응하기 힘들다. 밥숟가락을 놓자마자 TV 앞으로 달려가는 남편에게 작은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중국은 유교사상의 발원지이자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던 나라다. ‘여자는 재능이 없어야 덕(女子無才便是德)’이라는 공자의 사상은 수천 년 동안 여성을 짓눌러왔다. 교육의 권리도 박탈당했고, 재능을 떨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또 ‘삼종사덕(三從四德·여성의 굳은 절개)’ ‘부위처강(夫爲妻綱·남편에 대한 복종)’ 등의 말에서 보듯 여자는 남자의 부속품으로 전락했다. 육체적인 학대도 받았다. 발이 자라지 못하도록 한 ‘전족(纏足·foot-binding)’ 풍습은 그 한 사례다. 필자 역시 어릴 적 전족을 한 할머니를 보고 자랐다.

 이런 풍습이 오늘에 이르렀다면 중국은 아마 세계에서 가장 지독한 남성우월주의 나라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현 중국)이 건국되면서 확 바뀌었다. 중국 헌법은 여성을 ‘정치·경제·문화·사회·가정 등에서 남자와 평등한 권리를 가진 존재’로 규정했다. 마오쩌둥은 ‘이 세상의 반은 여성(婦女能頂半邊天)’이라는 말로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독려했다.

 그 결과 정치 분야에서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여성 대표 비율이 전체의 23.4%(699명)에 달하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도 여자의 힘이 점점 세지고 있다. 중국의 부호 리스트를 발표하고 있는 후룬(胡潤)컨설팅은 지난해 “전 세계 자수성가(self-made) 여성 부호 톱 5 중 4명, 톱 10 중 7명이 중국인”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중국 여자 선수가 딴 금메달이 남자 선수보다 많다.

 사회활동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며 여성들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중국 여성은 더 이상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가정에서 남자와 같은 지위와 결정권을 누린다. 회사에서도 승진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 회사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탁아시설도 비교적 충실하게 마련되어 있다. 집에 먼저 온 사람이 저녁을 준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젊은 세대들은 집안일을 분담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란다. 그들에게도 가사 분담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인보다 남편이 요리를 훨씬 더 잘하는 집도 많다.

 사회 발전은 남자나 여자 한쪽의 힘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조화로운 협력과 배려가 필요하다. 중국에는 “남녀탑배, 간활불루(男女搭配, 干活不累)”라는 속담도 있다. 남녀가 힘을 합쳐 일하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쉽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여권신장 움직임이 거세다. 한국 여자도 분명히 남자와 평등하게 일하고 집안일과 육아 등을 분담하는 것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은 여성 대통령을 탄생시킨 국가다. 최고 수준의 민주화를 이룬 나라이기도 하다. 이제 남자가 부엌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기대해도 될까?



왕설 중국 허난성 출신으로 뤄양외국어대에서 한국어 전공. 성균관대에서 국제정치학 석사를 받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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