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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금융권 인사 혼탁 이제 그만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요즘 금융권의 굵직한 인사를 앞두고 권력을 향한 각종 줄대기와 세몰이, 음해성 투서가 물밑에서 극성이라고 한다. 오죽했으면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경고성 발언’까지 했을까.

신 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금융에 계시는 분들이 사회적으로 보면 먹고살 만한 분들인데 그분들이 너무 인사에 민감한 것은 좀 그렇다”라고 말했다. 이어 “금융권은 우리 국민들한테 빚을 많이 졌다. (외환위기 때) 공적자금 168조원을 들여서 살려놨으면 자기나 조직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국민과 경제를 생각해야 하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금융권 경영자들이 다른 업종보다 높은 연봉을 받으며 돈 잔치를 하는 것도 모자라 ‘따뜻한 자리’를 차지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는 경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신 위원장도 사석에서 “금융권은 관치(官治)가 없으면 정치(政治)가, 정치가 없으면 내치(內治)가 판을 친다”며 고질적인 진흙탕 싸움을 꼬집은 바 있다.

금융권은 1987년 직선제 이후 정권 교체기마다 인사 몸살을 앓고 있다. 김대중정부 때는 호남권 인사들이, 노무현정부 때는 부산상고 출신들이 각각 약진을 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박근혜정부 출범 뒤에는 이명박정부 때 임명된 이른바 ‘4대 천왕(天王)’이 잇따라 물러났고, 앞으로도 퇴진 바람은 계속될 전망이다. 4대 천왕이란 금융계 핵심인사인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을 일컫는 말이다. 임기 만료 석 달을 남긴 어윤대 회장을 둘러싸고도 하마평이 무성하다. 그래선지 이런저런 이유로 조만간 교체설이 도는 자리를 놓고 각종 줄대기와 함께 경쟁자를 쓰러뜨리기 위한 음모가 난무하는 상태라고 한다.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등 10개 안팎의 금융공기업 및 금융협회장 후임이 벌써부터 거론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권 인사를 줄줄이 교체하는 것은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답지 않은 낯뜨거운 일이다. 거기에다 ‘후임 회장은 내가 해야겠다’며 조선 말기를 연상케 하는 망국적인 인사 청탁 운동을 한다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미국·영국 등 금융 선진국에선 정권 향배와는 상관없이 오직 주주와 소비자에게 책임질 뿐이다.

금융산업 발전과 관련해 우리는 ‘제조업의 삼성전자 같은 업체가 금융업에서도 나와야 한다’ ‘우리도 골드먼삭스 같은 세계적인 은행이 나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지금 같은 후진적인 인사관행이 계속된다면 정치권에 줄대기를 한 ‘자칭 금융전문가’, 노욕을 버리지 못한 ‘자칭 정권 실세’들이 장차 우리 경제의 암적 존재가 될 게 뻔하다. 이번에야말로 음습한 인사 청탁의 주범들을 찾아내 끝까지 불이익을 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