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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 회고록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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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슬픈 열대'의 저자로 유명한 프랑스의 문화인류학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1908~1991)가 프랑스의 '누벨 옵세르바퇴르'전문기자이면서 문필가인 디디에 에리봉과 대담한 내용의 몇토막을 옮겨보자.

에리봉=당신은 문학 작품들 사이에 우열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까?

레비스트로스=문학 작품에 대한 구조분석을 시도한다면, 나는 대중가요의 가사가 아니라 보들레르의 시를 선택하겠어요.

에리봉=재미있군요. 최근 한 소책자는 당신을 작품 간의 우열을 깨트리려는 운동을 선동한다고 하던 걸요.

레비스트로스=그 책을 읽지는 못했고, 언론 보도만 봤을 뿐입니다.

에리봉=문화 상대주의에 관한 당신의 글들에 입각해 그런 우열을 깨트리는 데 일조했다고 비판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레비스트로스=문화라는 단어가 가진 두가지 의미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일반적으로 문화는 어떠한 판단과 취향을 그럴듯하게 윤색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와 다른 문화에 대한 정의도 있는데, 그것은 문화를 지식.신앙.예술.도덕.법률.관습과 인간이 사회구성원으로 획득한 습관.소질로 봅니다.

전자의 관점으로 보면 작품의 우열이 드러납니다. 반면 후자의 관점으로는 작품들 간의 우열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이 연구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각각의 문화는 자신의 문화 안에서 우열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대화는 '레비스트로스의 회고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강 펴냄, 송태현 옮김)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1988년 그가 팔순의 나이에 가진 대담이기에 그의 사상과 삶을 보다 진솔한 육성으로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위 대화에서 자신의 문화 내에서 우열을 판단해야 한다는 레비스트로스의 견해는 그에게 영향을 받은 숱한 포스트모던적 흐름과 변별되는 모습이기도 해 눈길을 끈다.

레비스트로스는 무질서해 보이는 사회.문화 현상 속에서 그를 관통하는 일정한 질서를 찾아내는 구조주의 이론의 선구자이면서 또 문화 사이의 우열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상대주의의 선구자로도 유명하다.

아시아.아프리카 등 전통적 사회에 대한 편견과 대항해 싸워 온 그를 문명화된 서구가 문화상대주의라 불러도 크게 잘못될 게 없었다.

그런데 이 회고록을 통해 문화상대주의의 선구자이면서 그의 후학들과 다른 그만의 입장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책의 제목이 시사하듯 이 책에서 레비스트로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구체적 사물을 시.공간적으로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하면서 동시에 현장에 가까이 들어가야 했던 지식인의 이중적인 운명을 읽을 수 있다.

남미 원주민 부족 사회를 탐사했던 레비스트로스가 여행기 형식에 담아낸 '슬픈 열대'(1955)가 단순한 인류학적 보고서를 넘어 뛰어난 문학성으로 현대의 고전이 된 것이 우연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위의 대화처럼 자신에 대한 세간의 오해와 맞부딪칠 때 단호해진다. 특히 동시대의 지성 사르트르를 비판하는 대목에선 독설에 가깝다.

예컨대 "(사르트르는) 역사에서 하나의 역할을 담당하려 할 때면 횡설수설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줍니다"라고 몰아붙인다. 그런가 하면 대담자인 에리봉 기자와도 가시 돋친 설전을 벌이기도 한다. 가령 이런 대목이다.

에리봉=당신은 일기나 비망록, 그리고 '슬픈 열대'에서 인용한 '여정일지'를 늘 기록했나요?

레비스트로스=당연히 많은 메모를 남깁니다. '슬픈 열대'의 몇몇 구절은 내가 메모했던 내용들을 거의 그대로 다시 실은 것이었죠.

에리봉=하지만 당신은 엄격한 유형의 일기를 쓴 것은 아니었죠?

레비스트로스=나는 내 영혼의 상태에 대해서는 큰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어요!

에리봉=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당신이 '슬픈 열대'에서 '기억력이 매우 나쁘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레비스트로스=내 기억력은 자기 파괴적입니다. 나 개인과 직업적 삶의 요소들은 그 자리에서 제거해버립니다.

이번에 번역된 책은 크게 3부로 나뉜다. 중심 축을 이루는 1부는 출생부터 유년기, 학창시절에 이어 2차대전 후 뉴욕 활동 시절,프랑스 귀국 후 '슬픈 열대'집필,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취임 등 인생의 중요한 고비들을 짚어나간다. 여기서 '슬픈 열대'는 자신이 수 차례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임용에 실패한 후 절망 상태에서 집필한 것으로 공개되고 있다.

특히 갈리마르 출판사로부터 출판 계획이 퇴짜맞았다는 이야기나, 초판이 기본적인 포르투갈어 철자법도 확인하지 않은 오류 투성이였다는 고백이 흥미롭다. 세기의 지성들과의 학문적.인간적 교류도 눈길을 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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