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헷갈리는 정부의 기업투자 촉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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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논의 중인 이른바 ‘경제민주화’ 입법을 두고 “공약 내용이 아닌 것도 포함돼 있다”며 “무리한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1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기업을 지나치게 규제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이러한 규제는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으니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우리는 경기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가 절실한 상황에서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을 수 있는 과도한 규제에 대한 우려 표명은 적절하다고 본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경제민주화’에 대한 기업들의 불안과 국민의 혼란은 가시지 않는다. 공약에 포함된 지나치지 않은 ‘경제민주화’의 수준이 과연 어디까지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입법이 과도한 규제에 해당된다는 것인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기업이 보유한 현금과 현금성 자산의 규모를 적시하면서 “이 가운데 10%만 투자해도 추경의 세출확대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며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 확대를 촉구했다. 국회의 과도한 기업 규제를 막을 테니 기업들도 이에 호응해 투자를 늘리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과연 이 같은 언급만으로 기업들이 투자 확대에 나설지는 의문이다. 정부 스스로가 대기업에 대해 전방위적인 규제와 압박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는 물론 감사원까지 경쟁적으로 나서 대기업의 활동을 불공정 거래와 부당 이득, 편법 상속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다 국세청은 세수를 늘린다며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늘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앞장서 기업을 억누르면서 국회의 ‘과도한’ 입법을 막아줄 테니 안심하고 투자를 늘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규제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푸는 것이 좋다”며 “이것이 경제민주화와 상충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외국기업 유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데 국내 기업이 역차별을 받는 것은 아닌지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투자 촉진을 위해서는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면서 규제완화가 새로운 규제인 각종 경제민주화 조치와는 상충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여기다 ‘과감한 지원’까지 다짐하니 더욱 헷갈릴 뿐이다.

 사실 최근 들어 기업의 투자가 위축된 데는 기업 규제에 대한 우려와 함께, 세계경제의 침체와 내수 부진, 새로운 투자대상의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투자환경의 불확실성과 투자위험이 해소되면 기업의 투자는 자연히 늘어나게 돼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기업의 투자를 늘릴 생각이라면 억지로 투자하라고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면 된다. 그 첫걸음은 기업의 투자판단을 흐리는 정부의 엇갈린 정책신호부터 정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