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마 이겨낸 제2의 인생|사랑의 포교 8년 - 백령도의 전영발 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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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는 이 섬에서 나의 여생을 마치겠습니다.』 서해휴전선 최북단 백령도를 중심으로 구령 사업과 사회사업에 몸을 바쳐 일하고 있는 전영발(에드워드·모페트·44) 신부의 말이다.
인천에서 서북쪽으로 1백20마일 떨어져 있는 백령도는 바로 6마일 밖으로 바다를 건너 적지 옹진반도를 눈앞에 바라보는 고도.
전 신부는 이 섬에서 섬사람과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일하는 미국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구 1만7백 명의 이 섬에 세워진 그의 「김 안드레아」병원은 남서해안 도서 가운데 가장 시설이 잘 돼 있는 외과, 내과, 치과·「엑스레이」과를 가진 유일한 종합병원.
전라도를 비롯한 육지 나병환자의 미감아동 1백50명을 수용하고 있는 그의 고아원은 버림받은 어린이들의 낙원이기도 하다. 또 25명의 노인을 수용하고 있는 양로원이며 섬 어린이 50명이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유치원 등은 전 신부가 몸을 바쳐 이루어 놓은 시설들이다. 그가 이 섬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8년 전인 1959년. 고 「케네디」 대통령의 동창으로 알려진 그는 『가장 나쁘고 가난한 사람이 많은 곳에 보내달라』는 그의 간청이 받아들여져 이 섬으로 오게 됐다는 이야기다.
전 신부가 부임할 때 25명이었던 천주교 신자도 7천명으로 늘어났다는 것-.
김「안드레아」병원은 하루 입원료 50원, 결핵 환자는 완전무료. 그래서 멀리 연평도·인천 등지에서도 환자가 몰려온다는 것이다.
배를 타고 인근 도서인 대청도·소청도를 비롯하여 멀리 연평도까지 돌아다니는 전 신부는 몇 차례나 물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겼고 배의 발동이 꺼져 북괴 해역으로 흘러가다 해군함정에 의해 구출되기도 했다고-.
그가 섬사람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고 까나리 생선을 소금에 절여 먹어 가면서 섬사람과 어울리는 일도 이제는 몸에 밴 습성-. 돈이 많이 드는 사업을 지탱하기 위해 그는 미국 각처의 친지들에게 하루 30통의 편지를 써서 원조를 호소한다는 이야기-.
젊어서는 「프로」권투생활을 했고 신부가 된 뒤엔 중공치하에서 3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풀려 나오기도 한 그는 『늙으면 이 섬의 일들을 한국 신부에게 물려주고 더 작은 섬인 대청도에 들어가 숨을 거두겠다』고 했다. <백령도=심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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