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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의 모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당초에 「텔레비젼」을 산 것이 잘못이었다. 이대로 가면 아이들의 장래는 고사하고 나 자신의 장래부터 걱정스럽다. 밤이 나에게 가장 귀중한 작업시간인 요즈음은 아랫목에 늘어붙어 「텔레비젼」을 보는 빈도가 잦아지니 말이다. 일전에는 여섯살난 꼬마하고 「프로」선택에 충돌이 생겨 폭력으로이긴 일도 있다.
「텔리비젼」을 본다고 하여 반드시 휴식이 되는 것도 아니다. 광고방송에 짜증을 내기 시작하면 오히려 3년 감수는 틀림없을 것이다.
「리처드·킴블」이 쫓기다가 절대절명의 궁지로 몰리고, 온 식구의 숨이 가빠질 때 화면은 일변하여 느닷없이 선전방송이 뛰어 든다. 이때의 분노란 부정선거에 대한 그것의 류(?)가 아니다. 그런데 광고심리학에 의한다면 우리가 이와 같이 이를 가는 바로 그때의 광고효과는 가장 효과적으로 우리의 뇌리를 파고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여 우리를 일부러 골리다니 선전자의 냉혈적인 상혼은 너무하다.
우리에게 좀 부담을 적게 주는 방식으로 선전을 강요할 아량은 없으신지.
선전의 내용에도 수긍키 어려운 점이 있다. 가령 「텔리비젼」을 가진 독자들은 가지가지의 소화제의 선전만화를 아실 것이다. 그 중에는 화면에 「진수성찬」을 늘어놓고 잡수시오 잡수시오 이러한 소화제가 있으니 마음놓고 잡수시오 하는 식의 선전이 있다. 어쩐지 이 선전만화는 나의 마음에 거슬린다. 「로마」의 귀족들을 연상해서 그런 것일까.
「로마」말기의 귀족들은 온갖 미식에 지친 나머지 칠면조는 혀만을 먹고 그것도 배부르면 약을 먹고 토하고 나서 다시 먹었다든가. 「로마」가 망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아직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충분히 먹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처지에서 갈비와 통닭을 진탕 먹기 위하여 소화제를 상비하라는 선전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일까. 만약 굶주린 사람들이 이러한 장면을 보면 이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낱 만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처럼 심각히 생각하느냐고 냉소하는 광고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아닌 것을 현실처럼 환각케 하는 것이 선전효과의 중요한 일면이라면 그러한 만화에서 사람들이 현 사회에 대한 어떠한 왜곡된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고 하여 반드시 그들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어떤지 그 소화제의 선전방식은 부적당한 것만 같다. 사회적 책임은 생각지 않고 그저 돈만 벌자는 무절제한 상혼의 부주의는 아닐는지…. 남덕우<강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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