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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안마다 매번 진영 논리로 대결…얽힌 송사만 16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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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호 08면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 성남시 신청사. 7만4452㎡ 부지에 3222억원을 들여 2009년 완공된 이 건물은 재정 여건이 나쁜 지자체가 지은 ‘호화 청사’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중앙포토]

전국 지자체 가운데 최초로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 지자체 최초로 의회가 시장의 업무추진비 ‘0원’으로 삭감. 지자체 최초로 ‘준예산’ 체제 돌입. 지자체 최초로 시가 시의회 다수당 의원들을 상대로 ‘의정 보이콧 금지 가처분’ 신청.

막장으로 치닫는 성남시의회 갈등, 왜?

경기도 성남시청과 시의회가 한국 지방자치 역사의 불명예 기록을 잇따라 세우고 있다. 하나같이 부정적이고 후진적인 사례들이다. 1991년 도입(민선은 1995년) 이후 성년의 나이를 훌쩍 넘긴 한국 지방자치제도의 한계와 갈등의 극한 사례를 성남시가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다. 반대하기 위해 반대하고, 양보는 없이 상대방을 굴복시키기 위한 정략을 짜내는 데만 골몰하고, 시민을 볼모로 극한 대결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인구 100만 명을 넘어선 수도권의 핵심 지자체이자, 대표적인 신도시 분당·판교를 품고 있는 성남시가 왜 이런 파행의 주인공이 된 것일까. 일각에서는 정파를 중심으로 상대방을 적으로 몰아가는 ‘정당공천제’가 문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제도 이전에 구성원들의 자질 문제이며, 갈등 해결을 위해 구체적이고 공정한 ‘룰’을 세우는 게 먼저라는 의견도 많다.

같은 정책도 정략 따라 입장 뒤집어
성남시 의회의 파행은 2010년 본격화됐다. 그해 지방선거에서 당선돼 민선 5기 시장으로 취임한 이재명(민주통합당) 시장이 지자체 최초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성남시 관계자는 “시 재정 상태를 정확히 보여주고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충격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의회에서 다수당인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걸 ‘정치 쇼’로 규정했다. 시장과 다수당이 다른 ‘여소야대’ 상황에서, 시 의회는 이 시장이 추진하던 시립의료원 건립 추진과 산하단체 인사 등을 대부분 반대했다. 갈등은 지난해 악화됐다. 7월 후반기 의장 선거 과정에서 새누리당 몫으로 당연시되던 의장에 최윤길 의원(현재 무소속·당시 새누리당)이 선출된 것이다. 최 의원이 민주당과 ‘야합’해 의장에 당선됐다는 게 새누리당의 주장이다. 여기에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을 둘러싼 대립으로 하반기 시의회는 파행을 이어갔고, 지난해 12월 31일까지도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해 ‘준예산’ 체제가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파행은 올해도 계속됐다. 2월 28일 의회 임시회에서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안’이 가결되자 새누리당이 설립 조례안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의장 불신임안을 냈다. 이에 맞서 시는 보이콧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시민과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의 다툼도 이어져 현재 각종 소송과 수사 의뢰는 16건에 이른다.

문제는 이런 다툼이 정책이나 이념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도시개발공사 설립 문제도 지금은 새누리당 측이 줄기차게 반대하고 있지만, 이전 시장(이대엽, 옛 한나라당) 때는 민주통합당이 더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사안이다. 설립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저쪽’이 추진하니까 안 된다는 논리다. 의원들도 소통 부족과 감정적 대립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영희 성남시의회 새누리당 대표의원은 “이재명 시장 측이 처음부터 의회를 인정하지 않았던 게 문제”라며 “단체장과 의원들이 소통했던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윤창근 민주통합당 대표의원은 “사안에 따라 소속 정당과 의원 개인의 생각은 다를 수 있는데, 누가 추진하느냐에 따라 무조건 반대와 무조건 찬성이 엇갈리고 있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분노를 넘어 냉소로 치닫고 있다.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정형진 사무국장은 “성남시는 재개발이 필요한 구도심과 1기, 2기 신도시(분당·판교)가 합쳐져 있어 머리를 맞대도 풀기 어려운 복잡한 현안이 쌓여 있다”며 “이런 마당에 무조건 편가르기식 정략만 난무하니 제대로 진행되는 정책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갈등 중재할 제도적 방안 마련해야
성남시 사례는 언론에 집중 노출된 것일 뿐, 지자체 집행부와 의회의 갈등은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구리시의회는 지난해 7월 의장단 선출 때 민주당이 의장·부의장 자리를 모두 차지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단상을 점거하기도 했다. 시가 추진하는 사업에 새누리당 의원들이 불참해 반쪽 의회로 불리기도 했고, 몸싸움도 벌어졌다. 남양주시 의회도 지난해 6월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자신들이 지지하던 후보 대신 새누리당 지지 후보가 의장이 되자 3개월가량 등원을 거부했다. 특정 정당이 우세한 지역이라 해서 조용한 건 아니다. 나주시 의회는 지난해 4월 총선 당시 일부 지방의원이 자신들이 지지하던 국회의원이 탈당하자, 뒤따라 당을 떠나는 바람에 무소속이 다수를 차지하는 구도가 형성됐다. 지자체 의회 파행 사례의 상당수가 소속 정당·정파에 따른 다툼인 셈이다.

그래서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2006년 지방선거 때부터 시작된 이 제도 때문에, 정책 사안을 개별적으로 보지 않고 ‘정파적’ 이해관계에 기반해 다룬다는 얘기다. 성남시의회 최윤길 의장은 “시의원 공천권을 쥔 지역 국회의원들이 상대당 소속 시장이 잘해서는 안 되니 무조건 반대하라고 압력을 넣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충북대 행정학과 최영출 교수는 “이론적으로는 정당공천제가 되면 소속 의원의 잘못에 대해 정당이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그런 순기능보다 공천권을 행사하는 지역 국회의원의 수족처럼 변했다는 점”이라며 “시민이 뽑아준 기초의원들이 시민이 아니라 자기 위에 있는 국회의원만 쳐다보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당공천제만 바꿔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반론도 많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총장은 “처음 정당공천제가 시작된건 2006년 이전에 민선 자치단체장들의 난개발이나 세금 낭비 사례가 무수히 많았기 때문”이라며 “정당공천제를 버리려면 단체장이나 의원들이 선심성 공약이나 난개발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하며, 이게 없으면 다시 예전의 문제가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이걸 정쟁으로 몰고 갈 게 아니라 사안에 따라 공론조사 등 적절한 대응 방법을 찾아 제도화하자는 얘기다.

성남시청 한승훈 대변인은 “민선 5기의 임기가 1년2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의회와 집행부의 대립으로 시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의원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올 상반기에는 의회를 정상화할 수 있도록 다각도로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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