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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물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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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둘러싸고 감사원과 국세청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감사원은 일감 몰아주기가 사실상의 편법 증여 수단으로 쓰이는 만큼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세청은 취지엔 공감하면서도 법의 소급 적용은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두 기관의 충돌은 10일 감사원의 ‘주식변동 및 자본거래 과세실태’ 감사결과 발표로 촉발됐다. 감사원은 “일감 몰아주기 등 편법적인 부(富)의 이전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개정(2003년 12월)돼 과세 근거가 마련됐는데도 국세청이 그동안 사실조사도 안 하고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았다며 국세청에 증여세 과세를 요구했다.

 감사원이 증여세를 물리라고 지적한 사례는 9개 회사, 22건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은 2001년 2월 비상장법인인 현대글로비스(옛 한국로지텍·2005년 12월 상장)를 설립한 후 이 회사에 계열사의 물류 업무를 몰아줬다. 이로 인해 정몽구 회장의 아들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에 20억원을 출자해 3년여 만에 2조여원의 주가 상승 이익을 얻어 재산을 간접적으로 이전받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04년 1월 이후 비상장법인 SK C&C(2009년 11월 상장)에 계열사의 일감을 주며 인건비 등을 높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편법으로 이득을 얻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동생 이재환 대표가 2005년 7월 설립한 재산커뮤니케이션즈에 영화관 스크린 광고영업 대행 독점권을 낮은 가격에 팔아 이 회사의 영업이익에 도움을 줬다.

 감사원은 또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배우자와 자녀·손자 등이 회사 2개를 설립한 뒤 2005년 4월 낮은 임대료로 영화관 내 매장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현금 배당 280억여원과 782억여원의 주가 상승 이익을 얻었다고 밝혔다. 내부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도 부당한 부의 이전 사례로 제시됐다. 신준호 푸르밀 회장은 대선주조의 증설 예정 부지가 산업단지로 지정될 것이란 내부정보를 안 뒤 2005년 6월 손자 등 4명에게 127억원을 빌려주고 이 회사의 주식 31만8691주(지분 32%)를 매수하게 했다. 손자 등은 이 주식을 2년 뒤 팔아 1025억원의 양도차익을 얻었다. 감사원은 이 중 865억여원은 증여세 대상이라고 봤다.

 감사원의 지적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관련 부서가 통보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고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내부에선 반발하는 기류가 강하다. 지난해 법 개정 이전에 발생한 10여 년 전의 일까지 소급해 과세하는 건 무리란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지난해 법 개정을 통해 일감 몰아주기에 증여세를 물리기로 한 건 사실상 그 이전의 법 제도가 미비했다는 방증 아니냐”며 정부에 화살을 돌렸다. 기업들의 반발도 문제다. 신준호 푸르밀 회장의 손자 등은 국세청이 120억원의 증여세를 부과하자 최근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신청했다. 일부 기업은 이와 별도로 공정거래위로부터 일감 몰아주기 과징금을 부과받은 상태여서 이들이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선 감사원이 박근혜 정부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감사결과를 발표한 것이란 반박도 나왔다. 양건 감사원장은 지난 8일 기자간담회에서 “재정확충에 감사역량을 결집하겠다”며 “가시적인 재원확충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김창규·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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