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절 평양 군인들 총 대신 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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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은 전쟁 준비보다 봄맞이로 분주하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인터넷판이 6일(현지시간) 현지 르포로 전한 요즘 평양 분위기다. 북한이 연일 한국과 미국을 향해 위협적인 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실질적인 전쟁 준비는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는 평양 시민들이 “언제나처럼 ‘비정상적인’ 모습 그대로” 일상을 이어 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상황을 근거로 “북한의 전쟁 위협은 내수용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고 분석했다. 청명절(4일) 전후 평양 분위기를 전한 이 기사는 필자명과 정확한 방문기간을 밝히지 않았다.

북한 전방 군인들 밭농사 준비 북한이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최전방 북한군들은 요즘 땅을 고르고 밭을 갈며 농사 준비에 한창이다. 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황해도 개풍군 지역에서 북한군들이 밭에서 땅을 고르고 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평양 시내 공원엔 봄꽃 심기에 동원된 시민들이 보이고 돈이 없어 공사를 중단한 105층짜리 유경호텔 인근에선 파종을 위한 언 땅 고르기가 한창이다. 방문 중 가장 많은 군인을 볼 수 있었던 곳은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진입도로였지만 이들은 모두 삽을 들고 나무를 심고 있었다. 군용기나 군인용 막사, 기타 군사시설은 없었다.

 무장한 군인이나 경찰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딱딱한 표정의 사관학교 간부 후보생들만이 나무 총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정도였다. 기사는 “핵에 대한 두려움으로 유지되는 이 자기중심적인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몇몇 전쟁 관련 신호들은 설득력 있다기보다는 코믹했다”고 전했다. 전쟁 분위기를 내기 위해 시내버스와 전차엔 위장용 그물과 어설픈 나뭇잎을 달았지만 “(너무 위장을 잘해) 교통사고가 날 수 있겠다”는 외국 관광객의 농담에 평양 시민들은 키득거리기만 했다. 또 새벽부터 배경음악처럼 “단숨에 승리하자”는 내용의 혁명가가 흘러나오고 김정일의 생전 모습이 수십 번씩 재방송되는 평양의 상황을 “부조리극이 공연되는 극장”에 비유했다.

 경제난은 더욱 악화됐다. 지난해 12월 위성 발사 후 북한의 통화가치는 10% 더 떨어졌다. 현재 공식 환율은 달러당 100원이지만 암시장에선 8000원에 거래된다. 북한 공무원의 월급은 약 3000원으로 50센트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커피숍엔 제복을 입은 간부들로 붐볐다. 통화가치가 떨어질수록 외화에 접근할 수 있는 상층부의 이득이 커진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일부 평양 주민은 조바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들은 경제 제재 강화로 북한 정부의 외화 창구인 국영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을 우려했다. 현재도 북한 경제를 지탱하는 것은 순수한 인간의 노동력뿐인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부족을 보여주듯 북한의 수도와 인근 지방에선 농부와 동원 인력이 트랙터 하나 없이 맨손으로 언 땅을 일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고 덧붙였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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