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새가 돌연 추락하면 화학공격 의심” 북 도발 대비한 주민 매뉴얼 배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경기도 고양시 화정2동 주민센터 앞 버스정류장에서 한 승객이 게시판에 부착된 위기대응 매뉴얼을 살펴보고 있다. 고양시는 구체적 행동 요령을 담은 전단 10만 장을 만들어 배포 중이다. [안성식 기자]

7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 옥빛마을 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안. 주민 두 명이 긴장된 표정으로 벽에 붙은 전단을 읽고 있다. 전단의 제목은 ‘안보 위기 시 고양시민 행동요령’. 북한의 도발이 일어날 경우 주민들이 취해야 할 위기대응 매뉴얼이 그림과 표를 곁들여 설명된 것이다. 전단에는 인근 지역 대피소 위치를 표시한 약도와 함께 시청 재난상황실·당직실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주민 곽지만(49)씨는 “평소 준비해 둬야 할 비상 물품 목록과 화생방전 대비요령 등이 나와 있어 비상시에 침착하게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고양보다 더 북쪽인 접경지역에도 해당 지자체가 제작한 위기대응 매뉴얼 전단이 배포됐다. 파주시는 2만 장, 연천군은 1만 장의 전단을 각각 만들어 읍·면·동사무소에 비치하고 민방위교육 현장과 각급 학교에 배포 중이다. 전단에는 생화학·핵 무기 공격 때 대처 요령과 방독면 사용요령까지 이해가 쉽도록 그림을 곁들여 설명해 놓았다. “하늘을 날던 새가 갑자기 떨어지면 화학 공격이 의심되는 상황”이라거나 “많은 사람이 고열·구토·복통 증세를 보이면 생물학 공격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핵 공격이 있을 경우에는 핵폭발 지점의 반대 방향으로 엎드려 눈·귀를 막아야 한다는 등 구체적 행동 요령도 담았다. 오부근 연천군 민방위팀장은 “이번 주부터는 학교·주민센터뿐 아니라 각 가정에도 위기 시 대처 요령을 담은 전단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일 높아지는 북한의 위협 수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큰 동요 없이 차분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휴전선에 가까운 파주·고양 등 경기 북부 지역 주민들의 체감도는 사뭇 다르다. 예전에도 불바다 발언 등 북한의 위협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구체적인 행동 요령을 담은 전단이 뿌려진 건 유례가 없는 일이다. 고양시 안전도시과 이성옥 주무관은 “안전행정부 지침에 따라 고양시 실정에 맞는 안내전단 10만 장을 제작해 지난달 말부터 주민센터와 아파트 단지에 배포 중”이라고 말했다.

 최성 고양시장은 지난달 말 미국 버지니아주 라우든카운티와의 자매도시 결연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려던 계획을 전격 취소했다. 최 시장은 대신 비상급수시설·경보시설·대피소 등 관내 안보시설 현장을 점검했다.

 북한지역과 맞닿아 있는 민통선 지역 주민들은 예전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는 반응이다. 연천군 중면 횡산리마을 주민 천병호(56)씨는 “집에서 1개월가량 버틸 수 있도록 쌀과 부탄가스, 응급약품 등을 준비해 두고 있다”고 말했다. 횡산리마을 주민들은 지난해 설치된 주민 대피소를 점검하는 등 만일의 경우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라면 사재기와 같은 극도의 불안 현상은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홈플러스 문산점 이제혁(38) 주임은 “생수·라면·부탄가스·버너 같은 생필품의 매출에는 예년 이맘때와 비교해 큰 변화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고양·파주·연천=전익진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