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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 피천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내 책상 서랍 속에는 십여 년 전 「텐센트·스토어」에서 사온 구슬치기하는 「마블」 몇 개가 있다. 『라일락 너는 느름나무 그늘지는 거리에도 피어있다. 연과 「마블」을 파는 작은 가게가 있는.』
나는 어려서 장난감 가게 주인을 부러워하였다. 한 이백만원을 정기예금 해놓은 사람을 지금 내가 부러워하는 것보다는 훨씬 부러워하였다. 지금도 막상 장사를 시작한다면 장난감가게밖에 할 게 없는 것 같다. (물론 그 가게에서는 아이들에게 화상을 입게 하는 딱총은 아니 팔 것이다) 장난감가게는 우선 그 상품이 재미있다.
손님이 아니 오더라도 나 혼자 그것들을 가지고 놀 수 있다. 그리고 장난감가게에 오는 손님들의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이 있다. 약방과는 다르다. 이쁜 아기, 이쁜 엄마, 좋은 아빠, 좋은 할아버지 그리고 「크리스머스」가 오면 금방 부자가 될 것이다.
장난감가게를 하게 되면 부대사업으로 옆에다 장난감 「서비스·센터」를 내겠다. 바퀴 빠진 자동차도 고쳐주고, 다리 부러진 인형도 고쳐주고. 그러나 나의 어린 시절의 장난감들을 생각하면 수선료를 많이 받을 수 없다. 나는 어려서 무서움을 잘 탔다. 그래서 늘 머리맡에다 「앤더슨」의 동화에 나오는 주석으로 만든 용감한 병정들을 늘어놓고야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면 나의 근위병들은 다 제자리에서 꼼짝도 아니하고 서 있는 것이었다.
나는 미국의 한 은퇴한 철도회사 사장이 자기 집 마당에다 기관차, 그리고 철교·「터널」까지 갖춘 장치를 차려놓고 이웃아이들을 데려다가 기차놀이를 하는 것을 보았다. 현대문명이 자랑하는 「디젤」기관차도, 「제트」기도, 우주선도, 생각하면 다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가 내가 묻힐 때가 오면 구슬치기하는 구슬을 몇 개 넣어주었으면 한다. 골동품 수집가는 청자 찻잔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요, 부잣집 부인이라도 진주반지 하나 끼고 가지 못하지마는 아무리 탐욕스런 세상이라 하여도 나의 구슬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서울대 사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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