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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베트콩」속의 21일 - 미셸·레이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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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VC선생」떠나>
어느 날 「베트콩」선생이 떠나고 새로이 다른 사람이 왔다. 그는 유창한 불어로 나는 포로가 아니라 손님이며 그의 상관이 사실 「스파이」가 아니고 「프랑스」기자임을 확인할 때까지 어쩔 수 없이 자기들과 같이 지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곤 그는 『「하노이」로 가고싶어하는 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노이」(?)하고 반문하자 그는 『그렇소. 전에 있던 선생에게 「하노이」로 가고싶다고 말하지 않았소. 우린 현재 가능한지 알아보는 중이오』라고 대답했다.

<농부에 향수 선물>
그때서야 나는 그 선생에게 「하노이」에서 왔느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그의 불어가 형편없어 의사소통이 잘못된 것을 알았다. 나는 그렇게 어려운 여행을 할 수 없다고 그들이 결절을 내려 주기를 바라면서 다만 침묵만 지켰다. 그날 밤 우리는 「봉송」평원에 있는 산으로 올라갔다. 그곳 계곡에서 우리는 매일 밤 이집저집으로 옮겨가며 지냈다. 나는 목걸이와 향수를 농부부인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것으로 내가 거쳐간 자국이 발견되길 바라면서 「베트콩」들과 퍽 친하게 됐다. 어느 날 우리는 「봉송」평원 산너머에서 큰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짚으로 지붕을 이은 작은 흙집에서 「흰 이빨」여자「베트콩」·NLF요원 그리고 나 이렇게 네명이 「램프」밑에서 「카드」놀이를 했다.

<"내일은 폭탄세례">
전쟁소리는 멀리서 들리고 아득하고 푸근한 밤이었다. 이때 갑자기 누군가가 「다코다」(미군의 습격을 뜻함)라고 소릴 질렀다. 창 밖을 내다보니 하늘에서 예광탄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잠시 후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봉송」평원에 미군「헬리콥터」「드래곤·쉽」이 기총소사를 가하는 소리. 방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우리들은 석유 「램프」를 끄고 침대에 누워 빗발치듯 쏟아지는 불꽃의 선율을 창 밖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새벽1시까지 뜬눈으로 누워 있었다. 새벽2시 그들은 날 깨우면서 내일은 비행기와 폭탄이 많이 쏟아져 올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한 곳을 찾아 더 높이 산으로 올라가야 했다.
호랑이 굴서 이틀 밤
그들은 닭 한마리를 잡고 마른고기와 쌀을 항아리에 넣고 짐을 꾸렸다. 그 다음 3시간동안이나 산속으로 걸어 올라갔다. 날씨는 추워졌으며 나는 지칠대로 지쳤다. 험준한 바위위로 간신히 올라가자마자 나는 갖고 가던 생선항아리를 옷 위로 쏟고 말았다. 산 위엔 세수할 물조차 없었다. 우리는 옛날 호랑이 굴이었다는 동굴에서 이틀간 머물렀는데 나는 옴 몸에 생선냄새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런 생활로 2주일이 지났다. 거의 매일 새벽에는 동굴로 올라갔고 저녁엔 계곡에 있는 마을로 내려왔다. 나는 언제나 「카드」를 지니고 다녔으며 틈나는 대로 선생과 「카드」놀이를 했다.

<내이름은 「코캄랜」>
그래서 「베트콩」들은 나를 「코·캄·랜」(「카드」놀이하는 처녀)라고 불렀다. 때때로 「베트콩」신문을 가져다 보여주었는데 어느 날짜 신문에는 단2명의 소녀가 2천명의 미군공격을 저지시켰다는 기사가 실렸었다. 나는 『이 기사를 믿을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때론 그러한 얘기로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워져야 되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솔직히 인정했다. 첫 주일이 지난 후 나는 상당히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가 먹고싶어">
가끔 마을에 오는 월맹군인들도 퍽 친절했다.
쌀과 생선이 충분히 있으므로 배고픈 줄은 몰랐으나 고기가 먹고 싶었다. 하루는 「베트콩」들이 논에 자고 있던 여우를 잡아 즉석에서 구웠다. 나는 여우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산 위에선 맛있는 식인용 달팽이 사양으로 동네에선 어린애들과 줄넘기로 재미있게 보냈다. 나는 차차 「정글」과 폭격이 싫어졌고 날 「하노이」로 데리고 가지 않나 하고 겁이 났다. 집 가까이까지 포탄이 떨어지고 심한 폭격이 있은 다음 그들은 날 낯선 집의 캄캄한 방에 하룻동안 감금시켰다.

<성장도 소개받고>
이튿날 선생이 이곳 성장을 데리고와서 나에게 소개했다. 선생은 날 석방해준다고 말했다. 오후 4시 우리는 평화로운 논길을 따라 출발했다. 선생은 나에게 「베트콩」기와 밥그릇을 선물로 주면서 또다시 자기들을 찾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침이 되자 그들은 나의 짐을 모두 돌려주고 「모터사이클」로 「탐·쿠안」까지 데려다 주었다. 나는 그 후 미군 「헬리콥터」를 타고서도 그저 멍하니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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