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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어느 날 눈 떠 보니 난 파렴치한 범죄자가 돼있었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평소 경찰서 한 번 가보지 않았고, 살면서 교통법규 한 번 어겨본 적 없는 제가 졸지에 범죄자가 되려고 합니다. 영업사원의 말만 철썩 같이 믿고, 강의료와 콘텐츠 제작비라고 받았던 돈이 리베이트라니...대가성이 없었다고, 검사에게 아무리 증거를 보여줘도 믿질 않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한 달에 37만원이란 돈이, 절 천하의 부도덕한 의사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지난 1월, 동아제약 리베이트 사건이 연일 뉴스면을 장식했다. 검찰은 동아제약이 전국 병·의원 1400여 곳에 48억 원 가량의 리베이트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어 리베이트 수수 혐의로 100여 명의 의사가 줄줄이 검찰에 소환됐다. 의료계는 순식간에 발칵 뒤집혔다. 시민들은 의료계를 ‘부도덕한 집단’이라며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다른 리베이트 사건과 사뭇 달랐다. 의사들 사이에서 ‘억울하다’는 목소리가 하나 둘씩 들려왔다. 의사들은 자신이 '피의자'가 아닌 '피해자'라고 외쳤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리베이트가 아닌, ‘사기 사건’으로 정의 내렸다.

그러던 중 한 인터넷포털사이트에 ‘리베이트 수사 받은 의사 아빠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40대 개원의라고 밝힌 글쓴이 A씨는 강의 콘텐츠에 대한 대가로 받은 돈이, 하루아침에 ‘리베이트’로 둔갑해있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동아제약 리베이트 수수혐의로 12시간 동안 검찰에 조사를 받았다. A씨를 직접 만나, 동아제약 리베이트 사건에 얽힌 억울함을 들어봤다.

강의료‧저작권료로 받은 450만원이 리베이트 수수 혐의 씌워


현재 A씨는 리베이트 수수 혐의로 약식기소 돼, 복지부로부터 ‘2개월 면허정지’에 대한 행정처분 사전통지서가 내려온 상황이다(아직 내용검토, 의견서 제출 등의 과정이 남아있다). 정부합동의약품리베이트수사반은 동아제약으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의료법 위반)로 의사 119명과 병원 이사장 1명, 병원 사무장 4명 등 총 124명을 입건했다. 이 중 의사 18명과 병원 사무장 1명은 불구속 기소됐으며, 나머지 105명은 150만∼700만원의 벌금형에 약식기소됐다.

A씨가 말하는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 2011년 평소 형‧아우 사이로 지내던 동아제약 영업사원 B씨가 그를 찾아왔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을 대상으로 하는 의학 강의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당시 리베이트쌍벌제로 인해 의사들이 제약회사와 얽히는 것을 꺼려하던 시기였다. B씨는 회사 차원에서 모든 법적 검토를 마친 합법적인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그때 J컨설팅을 처음 소개받은 거죠. 우리나라에 제약회사 직원강의를 전문으로 하는 컨텐츠 회사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어요. 동아제약이 아닌, J컨설팅과 계약을 하고 제가 강의에 대한 컨텐츠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심할 부분이 전혀 없었어요.”

A씨는 당시 J컨설팅과 작성한 ‘교육개발 용역 계약서’를 보여줬다. 2011년 1월 26일에 작성한 계약서에는 “을(A씨)은 갑(J컨설팅)이 요청한 의료 서비스 전반의 정보를 담은 컨텐츠를 제작한다. 제작된 컨텐츠는 갑의 온라인 교육사이트를 통해 수강 신청자에게 제공된다”고 용역의 목적이 명시돼있었다. 또 이익의 배분에 대해서는 “갑은 을이 제작한 컨텐츠를 교육서비스로 제공하고, 수강을 통한 이익의 80%를 을에게 개발비로 지불한다”고 기술됐다. 특별히 의심할 만한 문구는 없었다. 동아제약에 대한 언급도 전무했다.

A씨는 강의 제작에 정성을 다했다. 강의 자료를 만드는 데만 2주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진료를 끝내고 틈틈이 만든 자료는 질환에 대한 79페이지짜리 파워포인트였다. 그는 강의 자료를 토대로, 20분 분량의 강의를 직접 촬영해 J컨설팅에 넘겼다. 강의에 대한 저작권도 모두 J컨설팅으로 넘어갔다.

이렇게 동영상 제작한 대가로 그가 받은 돈은 한 달에 37만원. A씨는 “애당초 돈을 위해 강의를 시작했던 게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얼마를 받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며 “매달 37만원씩 1년 동안 450여 만 원이 입금됐다는 것도 검찰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강의료와 컨텐츠 제공비, 저작권료가 모두 포함된 450만원의 비용 때문에 하루아침에 리베이트 수수한 범죄자가 돼버렸다.

“2~3주 걸려 만든 동영상 강의,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말인가”
지난 해 말부터 동아제약 리베이트 관련 뉴스가 들려올 때도, A씨는 자신이 연루된 일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1월 초, 검찰청에서 전화가 걸려왔을 때는 ‘보이스피싱’을 의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상황은 심각했다. 검찰은 참고인이 아닌, 리베이트 수수에 대한 ‘피고인’의 자격이라며 A씨를 소환했다. “경찰서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제가, 검찰에 아침 9시에 들어가 저녁 9시 반에 나왔습니다. 처음엔 두렵고 당황스러웠죠. 12시간 동안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가물가물했고요. 그래도 전 당당하니까, 제 이야기가 검찰에 수용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믿었던 동아제약에게 먼저 뒤통수를 맞았다. A씨는 “전혀 리베이트와는 상관없는 사업이라고 의사에게 말했던 동아제약이, 중간에 진술을 바꿔서 의사들이 듣지도 못한 말들을 허위로 검찰에 전했다”며 “검찰은 대질신문을 해달라는 요구를 묵살한 채 일방적으로 영업사원의 진술을 믿고 의사를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검찰측은 동영상 강의에 대한 대가 지불을 ‘신종 리베이트’라고 정의 내렸다. 검찰은 ‘대학교수가 아닌 개원의에게 강의를 의뢰한 것부터가 의심스럽지 않았나’, ‘1번 강의에 400만원이라는 액수는 너무 과하지 않냐’며 A씨를 몰아세웠다.

A씨가 가장 억울한 것은 이 부분이다. “대학교수는 아닐지라도, 10년을 넘게 공부해 전문의가 됐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전문지식을 이용해, 강의를 만들어 통째로 넘겼는데, 검찰은 그것이 아무 가치가 없다고 합니다. 2~3주 개인시간을 쪼개가며 PPT를 만들고, 자신 얼굴이 다 나오게 강의를 찍어서 모든 저작권까지 넘겼는데, 한 달에 37만원 받은 게 그렇게 과한 액수인가요? 애당초 리베이트 수수가 목적이었다면, 뭐 하러 투명하게 통장 계좌로 돈을 받고 세금까지 냈겠습니까?”

이 같은 A씨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모든 과정 자체가 합법을 가장하기 위한 교묘한 리베이트 수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A씨는 “검찰의 주장대로라면, 이렇게 허술하고 투명하게 모든 것을 진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동아제약이 뭐가 아쉬워서, 대가없는 리베이트를 준단 말인가?”


리베이트를 판단하는 중요한 바로 ‘대가성’이다. 리베이트를 받고 나서, 동아제약 제품의 처방이 증가했는지 여부다. A씨는 “검찰이 리베이트의 대가성을 증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번 사건과 관련해 그 어떤 대가성도 입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A씨는 자신의 병원 처방통계를 ‘대가성 없음’의 증거로 검찰에 제시했다.

“우리 병원의 2008~2011년까지 동아제약 처방 비중을 보면, 7.7%-6.8%-7.0%-7.9%로 비슷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이를 검찰은 ‘앞으로 처방을 비슷하게 유지해달라는 대가’였다고 해석하더군요. 다른 원장님은 오히려 동아약 처방이 줄었는데, 검찰은 ‘더 이상 줄지 않도록 하는 대가’였다고 주장했어요. 동아제약 처방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유지되거나 줄어든 것까지도 모두 리베이트의 대가라고 하는 검찰의 논리는 결국 동아약의 처방과 상관없이 ‘무조건 너희 의사는 범죄자’란 말 아닌가요?”

동아제약이 자사 제품의 처방이 늘지도 않을 곳에 리베이트라고 돈을 대줄 이유가 없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또한 자신의 병원에서 마음만 먹으면 항생제, 소화제 등 늘릴 수 있는 동아제약 품목은 많았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리베이트의 대가성이 없었다는 것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떳떳한 의사 아빠 되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
A씨는 지금의 심정을 ‘담담하다’고 표현했다. 검찰에 소환되고 한 달 동안은 너무 화가 났다. 검찰, 동아제약, 환자 등 세상의 모두가 자신의 ‘적’과 같이 여겨졌다. 억울함을 호소하며 인터넷포털사이트에 올린 글에는 공감보다는 부정적인 댓글이 더 많이 달렸다. 의사들 사이에서도 “리베이트인지 다 알고 받아놓고 뭐가 억울하냐”는 시선이 있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두어 달 지난 지금, 그는 자신이 너무 순진했음을 깨달았다. “세상을 너무 몰랐고, 사람을 너무 믿었던 제가 잘못이죠. 친구들 사이에서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불리는데...제가 이런 일 당했다니깐, 세상이 망해간다고 말한 친구도 있어요. (웃음) 이제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갈지가 고민이죠 뭐.”

A씨는 이번 사건에 연루된 의사들의 모임을 만들었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 결과에 따라, 소송을 진행해나갈 계획이다. 40여 명의 의사가 모임에 가입한 상태다. 소송에 드는 비용의 부담과 심적 고통 때문에, 행정처분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들도 있다.

“개업 후 7년 동안, 제대로 휴가를 가져본 건 딱 한번 뿐이에요. 면허정지 2개월? 까짓것 그동안 가족들이랑 휴가 간다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그렇게 넘어가면, 검찰의 말처럼 범죄자임을 인정하는 셈이 돼버리잖아요. 여섯 살 된 아이에게 뒷돈 챙긴 아빠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서 끝까지 싸울 겁니다.”

더불어 A씨는 자신과 같은 제 2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전국의사총연합과 함께 ‘리베이트 쌍벌제’에 대한 위헌 소송도 계획 중이다. 리베이트에 대한 애매모호한 규정과 이중처벌의 부당함에 대해서다.

“자기 돈으로 빚을 내서 개업을 하고 병원을 운영해야 하는 개인병원 의사들에게 아무 도움도, 권리도 주지 않으면서, 마치 공무원처럼 규제를 하고 의무만 강요하는 국가의 행태를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리베이트 쌍벌제를 폐지하라는 게 아니라, 애매모호한 부분을 명확하게, 합리적으로 고쳐달라는 얘기입니다.”

물론 쉽지만은 않은 싸움이 이어질 것이라 그는 예상한다. 이길 확률보다 질 확률이 훨씬 더 높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의사는 더 이상 우리나라의 상류층도, 부자도 아니라며 A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행여라도 설령 이 재판에서 이기더라도 저희에게 남는 건 무엇일까요? 개업의사는 국가에서 지켜줘야 할 권리도 없는 집단인가요. 너무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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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기자 okafm@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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