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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만주리→북평→광동→향항 - 이수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홍위병 우선 승차> 기차는 대단한 혼잡상태였다. 이 열차는 홍위병용이 아니어서 일반승객도 많이 타 있었으나 홍위병의 연락 임무라고만 하면 아무도 승차를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홍위병의 난입으로 결국에 가서는 일반인은 모두 열차에서 끌어내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열차는 역마다 홍위병의 혼잡으로 몇 시간씩 정거하면서 천천히 남하했다. 차안에 있는 자들은 이들을 못 들어오게 해도 철로를 가로막고 버티는 바람에 그대로 갈 수도 없고 해서 승객은 걷잡을 수 없이 불었다. 객차 한 칸에 정원이 1백 여명인데 5백 여명이나 타게되니 운신할 도리가 없다. 물론 변소에도 갈 틈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대소변을 앉은자리서 보는 형편이며 더욱 딱한 것은 여자 홍위병들이 바지를 입은 채로 소변을 싸는 꼴이었다. 그러니 차안의 불결이란 형용할 수가 없었다..

<열차 다이어 엉망>
그러다보니 자연 홍위병의 강제승차로 열차 「다이어」는 엉망이 되고 결국 「하이랄」까지 와선 열차운행이 「스톱」되고 말았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열차에서 내려 역의 휴게실에서 자게된 신세가 되었다. 아무도 이렇게 괴로운 여행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며 밤중에 여기저기서 흐느껴 우는 광경까지 있었다. 잠꼬대에선 부모들을 부르다가도 눈을 뜨면 괴롭다는 소리는 한마디 못한다. 했다가는 반혁명 고깔모자를 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음날도 이런 여행을 되풀이했다. 우리는 출발전에 「모택동 어록」을 받았고 문화대혁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엄격 지시를 받았다. 아무도 이 지시를 이행하는 사람은 없었다. 열차 안에서는 시종 아우성과 싸움으로 지새웠다.

<군인이 겨우 제지>
동승한 군장교들은 때로는 『조용히 하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여러분 떠들어선 안돼요. 적기아래서는 모두의 관점·목표·방향은 일치해요. 자 여러분! 「모택동 어록」○○「페이지」를 펼쳐 같이 읽읍시다』고 목이 터져라고 외치지만 이 말을 귀담아 듣는 자는 없었다. 「하르빈」근처에 가보니 난데없이 홍위병끼리 일대 난투극이 벌어졌다. 북평으로부터 「하르빈」으로 연락차 온 「팔일팔조반단」과「하르빈」공대의「홍색조반단」과의 사이에 벽신문 붙일 자리문제로 옥신각신하다가 충돌, 양쪽 대원은 난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경찰의 개입으로 진압되었다.
북평에 도착한 것은 11월16일 이었다. 여기서 백명이 한조로 개편되었다. 역전 근처에 모여있는 홍위병은 약 40만 명이 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영정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여기서 정말로 곤란한 것은 용변 문제였다. 처음에 길가에 구멍을 파서 용변을 보았으나 워낙 사람이 많아 곧 넘치는 바람에 근처에 있는 웅덩이를 찾아 용변을 보아야 처지였다.

<천안문의 희소식>
밤이 돼서야 겨우 한 대의 대형「트럭」이 와서 우리 대를 북평 제4 건설공사 뒷마당의 접대장으로 실어다 주었다. 이로써 밥과 집은 겨우 보장된 셈이었다. 여기서도 양표가 없는 자는 차용증 하나면 다 되었다. 11월18일 나는 북평성을 구경하러 나섰다. 거리는 홍위병의 물결로 소란 그대로였다. 전차라는 전차는 무임 승차하는 홍위병으로 시민들이 탈 엄두도 못냈다. 전차를 탄 홍위병들은 여행 기분을 내면서 내리려 하지 않고 항의하는 시민이라도 나서면 두들겨 패는 판이었다.
11월19일 상오3시께 난데없는 군인의 고함소리로 잠이 깨었다. 『모택동이 여러분들을 접견하게 되었다』고 외쳤다. 수면 부족의 눈을 비비며 천안문으로 달려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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