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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부짖던 그들이 달콤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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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피아가 스스로 내린 멤버에 대한 정의는 이렇다. 왼쪽부터 옥요한(느낌 좋은 보컬)·혜승(드럼·표정은 무덤덤해도 소리는 예술)·심지(건반·연주엔 빈틈, 표정은 일류)·기범(베이스·꼼꼼한 가장). 헐랭(술에 절은 기타리스트)은 인터뷰 당일 건강에 문제가 생겨 함께하지 못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저 멀리 날 부르는 불빛 아래엔 언젠가 이루지 못한 내 꿈이 있겠지/더 가까이 반짝이는 별빛 아래에 아마도 아물어가는 내 봄이 오겠지.’

 지난해 가을 KBS ‘탑밴드2’에서 우승한 밴드 피아(pia·彼我)의 새 싱글 ‘내 봄으로’의 가사다. 담담하고 서정적인 가사처럼 멜로디와 사운드도 봄햇살마냥 따사롭고 감미롭다. 강렬한 사운드, 포효하는 보컬은 잠시 내려놨다. 극도로 자제한 가운데에서도 옥요한(38·보컬)·기범(38·베이스)·헐랭(37·기타)·심지(33·건반)·혜승(32·드럼) 다섯 멤버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데엔 역시나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봄을 맞아 발톱을 숨긴 피아를 서울 동교동 연습실에서 만났다.

 “지난 겨울 강화 교동도라는 섬으로 여행을 갔어요. 눈밭에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가사로 썼죠. 마침 심지(건반)가 써온 곡과 가사가 딱 들어맞았어요. 제가 겉으론 야수를 포장하지만 감수성은 여성적이에요.”(옥요한)

 “지난 겨울 너무 추워서 보일러가 두 번 동파됐어요. 유난히 겨울이 길어선지 올해 봄 노래가 많대요.”(심지)

 피아는 탑밴드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팬들에게 헌정하는 싱글 ‘메이크 마이 데이’(Make my day)’를 내곤 동면에 들었다. 탑밴드는 그만큼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일이었다.

 “매주 새로운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어요. 편곡 작업이 밴드간에 화합이 잘 되어야 되는 부분이라, 결과적으론 멤버간 결속을 재확인한 계기가 됐죠.”(옥요한)

 시청률은 높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평소 시끄러운 음악을 하는 자식들이 밥은 먹고 다니는지 걱정하던 가족들에게 프로그램이 답이 되었으니까.

 “저희 아버지가 100번은 돌려보신 것 같아요.”(혜승)

 “시청자 투표를 반영하니까 저희처럼 멤버 수가 많은 밴드가 유리할 수밖에 없었죠.”(심지)

 피아는 1998년 부산에서 결성된 밴드다. 이듬해 ‘제 2회 MBC 록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은 뒤 상경해 1집을 발매했다. 2002년 서태지컴퍼니 산하의 괴수 인디진 레이블에 합류했다. 넬과 함께 ‘서태지가 선택한 밴드’라며 주목 받던 피아는 5번째 앨범부터 현재의 윈원엔터테인먼트로 옮겨 냈다.

 “태지형 밑에서 많이 배웠어요. 서태지라면 돈을 많이 들여 녹음할 것 같지만, 가내수공업이에요. 보통은 엔지니어들이 알아서 하는 레코딩 기술까지도 섬세하게 관여하세요. 시간과 노력을 들여 높은 퀄리티를 뽑아내죠.”(기범)

 그럼에도 떠난 이유는 “마음껏 세상에 도전하고 싶어서”였다. 잠깐 휘몰아치듯 활동하고 3~4년 잠잠한 서태지의 패턴이 혈기왕성한 피아에겐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톱밴드’란 명성을 얻었지만 배움에 대한 욕구는 강렬하다. 옥요한과 기범은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실용음악학과 2013학번으로 입학했다. 옥요한은 “음악적으로 더 배워보고 싶어서 등록했다”고 말했다. 기범은 피아가 일본에서 활동할 때 일본어를 독학으로 익혀 통역을 맡았을 만큼 밴드 내에서도 학구적인 캐릭터다. 기범은 새 싱글 나오던 날 아들을 얻어 멤버 중 처음으로 아빠가 됐다.

 “지난해엔 탑밴드 때문에 페스티벌을 못했어요. 올해엔 공연과 곡 작업에 몰두할 겁니다.”

 다음 달 27일 내귀에도청장치·로맨틱펀치와 함께 홍익대 브이홀에서 여는 콘서트 ‘록 스프링’은 티켓 오픈 몇 분 만에 매진됐다. 5월 17~8일 난지 한강공원에서 열리는 ‘그린플러그드 서울’에는 2년 만에 출연한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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