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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FBI 도청 사건 폭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금 미국의 정계는 이른바 전화도청 폭로 시비로 한창 떠들썩하다.
이 사건은 1월 10일부터 전 상원 민주당 비서역인 「보비·베카」의 재판에서 비롯됐다. 「베카」는 올해 38세. 일찌기 「존슨」 대통령의 부통령 때부터 『가장 믿음직스럽고 충실·유능한 친구』로서 그의 주목을 끌었었다.
그러던 그가 탈세·절도·사기 등 아홉 가지 죄목으로 걸려든 것이다.
세상 사람은 FBI(연방수사국)가 도청 수단으로 알아냈다고 했을 때 또 한번 깜짝 놀랐다. 모르기는 하지만 FBI가 전화 도청을 한다는 소문은 그럭저럭 10년 전부터 들리기 시작한 풍문이었다. 그것이 지금에 와서 크게 문제된 것은 포도 대장이라 할 「후버」 FBI장관이 이 사실을 시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도청이 차기 대통령 후보의 유망주이며 현 미국 정계에서 인기가 대단한 「로버트·케네디」상원의원이 법무장관 때 재가한 것이라니 화제는 벌집을 쑤신 듯 했다.
「케네디」 의원이 『나는 전혀 모르는 사실이다.』고 말하고 있는데 대해 「후버」장관은 『그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반드시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라고 정면으로 도전.
『아니, 전혀 기억에 없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을 거짓말쟁이라고 응수하고 나섰다.
「후버」라고 질리 없다. 『「케네디」 의원은 재임 당시 도청 문제에 특히 열심이었고 도청 장치를 개량토록 하라고 까지 말했다.』 「케네디」 의원은 바짝 약이 올랐다. 『그렇다면 어느 법무장관 때 어떤 지령이 내려졌는지를 모조리 공개하면 되지 않나.』 입씨름이 이쯤 되자 과연, 비밀보지의 책임을 직책상 지니고 있는 「후버」 장관이 입을 꼭 다물고 말아 설전은 일단 끝났지만 FBI의 전화 도청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로 드러나고만 셈이 되었다. 그러나 궁금한 것은 「후버」 장관의 속셈. 도청 문제를 왜 사실로서 공개했을까 하는 점이다. 일설에 의하면 「케네디」의원은 일찍이 「매카시」 위원회의 수석 위원으로 「적색분자 소탕」의 급선봉에 섰었는데 지금은 「자유주의자」로서 인기 절정. 41년간 FBI 왕국에 군림하여 미 정계 내막을 미주알 고주알 다 알고 있는 「후버」 장관으로서는 배알이 뒤집혔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다.
옛날은 어떻든, 지금 「자유주의자」로서의 「이미지」를 국민에게 던져 주면서 인기 절정인 「케네디」 의원에게는 「도청」이 입맛 쓸 수밖에. 잘못해 빗나가면 대통령 선거전에서 치명상을 입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 상원의 행정·형사 사법의 양 소위원회도 이 문제는 국민의 「사생활 보호의 권리」에 저촉된다고 중대시, 진상을 규명키 위해서 멀지않아 공청회를 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FBI 도청이 표면화한 다음날, 이번에는 FBI가 「워싱턴」에 있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대사관에 비밀 전화 장치를 해 두고 「도미니카」 대사관의 전화를 도청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되고 말았다. 그러자 미국 의회에 걸리는 전화도 도청되고 있다고 밝혀져 소란은 더 한층 커졌다. 『그렇다면, 어쩌면 우리 집 전화도…』하고 일반 시민들까지 공포에 싸이고 도청 「노이로제」에 걸리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당황한 당국은 『현재 통화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은 35개소 내지 40개소로 국가의 안전과 범죄 방지 상 부득이한 곳에만 한정돼 있다.』고 해명에 급급했다. <「워싱턴」=신상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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