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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FOCUS] 박근혜 시대 한·러 관계 발전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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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어려운 선택’. 니야즈 카리모브

러, 한국의 미 정책 추종에 불만
새 대통령이 균형 잡아주길 기대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보다 다소 유연하겠지만 여전히 기존 외교 정책 노선은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처한 국내외 정세 특히 북한 문제를 둘러싼 정세는 복잡하고 험하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의 대결 노선을 지양하고 평양과의 대화와 협력을 재개할 필요가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북한은 오히려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으로 남북 대화의 창을 사실상 폐쇄했다. 박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고 대화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북·미 대화가 남북 대화의 창구를 열어 줄 것으로 기대하며 대북 강경 발언과 행동을 자제한 채 화해의 손길을 꾸준히 내미는 것 외에 달리 대안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보수 지지층과 도발을 응징하라는 여론의 압력으로 이런 화해 제스처조차 유지하기 힘들게 됐다. 핵 문제 해결과 새로운 한반도 평화안보 체제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위상과 영향력은 전보다 약화됐다. 6자 회담 재개가 한국에 유익할 수 있지만 한국 보수 지지층에는 6자 회담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여전히 강하다.

이전 정부가 남긴 유산 때문에 한국의 주변 4강들과 관계 전망도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박 대통령은 전임자보다 더욱 긴밀한 대미 관계를 구축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한ㆍ미 간 실질 현안을 타개하는 게 더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ㆍ중국 간 대립이 심화되면서 미국은 한국에 최대한의 지지를 요구할 것이다.

대일 관계도 빠른 결실을 거두기 어렵고 대중 관계 개선도 만만치 않다. 단기간 내 한ㆍ중 간 무역 마찰이 해소되기 어려우며 북한을 둘러싼 한ㆍ중 간 대립 양상도 유지될 것이다. 주변 4강 중 대러 관계가 그중 가장 무난하며 박 대통령의 결단에 따라 임기 동안 관계가 개선될 여지는 많다.

러시아는 한반도 긴장 완화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박 대통령이 대북 화해 행보를 할 경우 지지를 받을 것이며 러시아는 남북 대화 구축에 기여할 것이다. 러시아는 6자 회담 재개, 보다 정확히는 비핵화뿐 아니라 새로운 한반도 안보 체제 구축을 의제로 6자 간에 새로운 협상을 추진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협상은 한국 정부에도 유익하다는 점을 박근혜 정부가 가능한 한 빠르게 올바로 인식하기를 기대한다.

러시아 국민은 한국이 미국 정책을 추종하는 데에 불만을 품고 있다. 러시아의 공공 혹은 민간기구 내 한국 관련 전문가들은 신임 대통령이 균형 잡힌 정책을 펼 것이란 기대감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가 남북 및 한·러 관계 현안에서 강경 노선을 취하는 것에 다분히 피로감을 표출해왔다. 서울의 대러 정책 기본 목표가 러ㆍ북 갈등 유발이라는 의구심까지 갖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여러 차례 정상회담을 했지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만한 협정이 체결된 바 없으며, 러시아의 ‘러ㆍ북ㆍ남 삼자 협력 사업 제안’도 침묵의 벽에 부닥쳤다. 박 대통령이 개인적 결단을 내린다면 양국 관계의 무기력함을 극복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박 대통령과 러시아 정상이 첫 회동을 하면 여러 측면에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특히 두 정상이 북한의 김정일과 만나 본 공통 기억도 있어 안보 분야에서 공통 분모를 찾는 데 성공한다면 양국 관계는 새로운 도약 국면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에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러ㆍ남ㆍ북 협력사업으로 한반도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철도를 연결하고, 남북 종단 가스관 부설 사업에 착수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정부와 재계를 다독여 만연한 회의주의를 극복하고 임기 내 실현 가능하도록 정치적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 이는 남북 관계를 개선하며 러시아는 북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국의 러시아 극동지역 투자 확대, 무역장벽의 제거도 중요한 현안이다. 아직 한·러 자유무역체제 구축은 논의되진 않지만, 러시아는 분명 한ㆍ중ㆍ일 삼국 간 자유무역지대 창설에 참여하는 데 흥미를 가질 것이며 한국의 관련 제안이 있다면 의미 있을 것이다.

게오르기 톨로라야 러 과학아카데미 산하 한국프로그램센터 소장

한국, 친미·반러 이분법 벗어나고
러시아, 북한 개방 위해 노력해야

박근혜 대통령의 신정부가 대외적 좌표를 어떻게 설정할지 한반도 주변국들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 가운데 한·러 관계는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양국이 추구하는 국익 구조가 상호 보완적이어서 안정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 근거 몇 가지를 제시해 보면 이렇다.

우선 한·러 간에는 우호 협력의 확대를 제한하는 영토분쟁, 민족갈등, 역사 불신이 없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포함해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 창설 등 주요 이슈에 대한 인식도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과학기술 협력을 위한 최적의 동반자이며 경제 구조도 상호보완적이다. 철도, 에너지, 식량, 신규 시장 개척 등 점차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커가고 있다는 점도 관계 발전의 긍정적 전망을 뒷받침한다.

한·러 수교 이후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성장과 발전을 지속해온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체로 전문가들은 양국이 지닌 상호 협력 가능성과 잠재력에 비해 실질 성과가 부족했다는 평가를 내린다. 지정학적 협력의 밀도나 지경(地經)학적 상호 작용 수준 면에서 미ㆍ중ㆍ일ㆍ러로 대표되는 주변 4강 가운데 한·러 관계가 상대적으로 안정감이 떨어지고 무역 규모도 가장 낮다.

2008년 9월 양국 관계가 전략적 관계로 격상됐지만 외교적 수사(修辭)와 실질적인 협력 사이에 적지 않은 괴리가 있다.

박근혜 신정부 시대 한·러 관계가 명실상부한 전략적 관계로 진입하려면 발전을 구조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두 가지 요인을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는 북한 요인이다. 그동안 북한은 한·러 관계 발전을 가로막았고, 여전히 막고 있는 상시적 장애물이다. 한ㆍ러 사이의 지경학적 연계성을 강화해주는 일련의 경협 프로젝트들, 예컨대 시베리아횡단철도(TSR)-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 남-북-러 전력망 및 가스관 부설 등은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북한에 가로막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북한의 군사 도발과 핵 개발은 동북아 역내 불안정을 심화시키면서 한·러 관계 증진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해왔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북한 세습정권 유지에 일정 수준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러시아 대북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특히 중국과는 별개로 북한체제의 평화적인 개혁·개방을 유도할 수 있는 보다 실효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두 번째 요인은 한국 외교의 미국 중심성이다. 2008년 2월 굳건한 한ㆍ미 동맹을 강조하면서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그해 9월 새삼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 이유는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부활, 일본의 보수 우경화, 미국의 상대적 쇠퇴, 그리고 철도의 연결과 에너지 파이프라인의 부설이 엮어내는 동북아 신질서의 태동을 염두에 둔 것이다. 또 한국의 독자적인 국익 확대와 한반도 평화통일 기반 조성을 위한 외교·안보 전략의 기본 틀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도 작용했다.

문제는 현 한·미 동맹 구조하에서 한국 외교의 운신의 폭이 좁다는 데 있다. 한국 외교가 미국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대러 정책의 자율성은 제한받는다. 한국이 한·미 동맹을 경직되게 수용하고 그 틀 속에서만 움직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과도 전략적인 ‘관계 맺기’를 이루기 어렵다. 한·미 동맹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유연하게 해석하는 창조성 위에서 러시아를 포함한 주변 4강과의 ‘전략적 관계 맺기’가 시작될 수 있는데, 사자성어로 연미화로(聯美和露) 또는 연미연로(聯美聯露)로 표현할 수 있다.

21세기 한국이 한반도의 안보와 핵심적인 국가이익을 주도적으로 확보하려면 친미, 반러, 반미, 친러 등과 같은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동맹 및 우방들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발전시키는 가운데 체제와 가치를 달리하는 주변 국가들과도 협력의 틀을 확대해 나가는 중층적이고 선순환적인 대외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홍완석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장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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