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묘수가 없다 … 정부, 화끈한 부양책보다 연착륙에 무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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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은평뉴타운의 한 부동산 중개소에 급매물 전단이 붙어 있다. [박종근 기자]

경기도 화성시에 사는 최모(34)씨는 손해 보고 집을 팔려 해도 팔 수가 없다. 그는 5년 전 1억2000만원의 대출을 끼고 3억7000만원에 집을 샀다. 현재 시세는 3억원으로 떨어져 있다. 최씨는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집을 팔기로 했지만 뜻밖의 문제에 부닥쳤다. 당장 들어와 살 실수요자에게 팔려면 세입자에게 전셋값(2억2000만원)을 돌려주고 대출을 해소해야 한다. 그러려면 시세보다 4000만원 많은 3억4000만원이 필요하다. 집을 팔려면 먼저 4000만원을 새로 대출받아야 하는 것이다. 최씨는 “돈이 없어 집을 못 파는 상황이 황당할 따름”이라며 “정부가 곧 내놓는다는 부동산 대책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최씨의 기대는 충족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조만간 나올 정부의 종합대책에 ‘화끈한 한 방’이 포함되기 어려워서다. “장고에 장고를 거듭해도 묘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말이다. 주택경기는 단순히 주택 거래량과 가격에 좌우되지 않는다. 경제성장률과 인구구조 변화, 조세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고차 방정식이다. 정부가 굳이 ‘활성화’가 아닌 ‘정상화’ 대책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속사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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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최우선으로 고려되는 카드는 공급 축소다.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정부가 비교적 쉽게 선택할 수 있다. 특히 수도권이 문제라고 정부는 보고 있다. 수도권 미분양 주택은 지난 1월 말 3만4000가구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따라서 역대 정부가 벌였던 수도권 신도시·보금자리주택 등 대규모 개발사업을 대폭 축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현재 경기도에서 공공개발 사업부지로 지정됐으나 첫 삽도 뜨지 못한 곳은 26개 지구(7158만㎡)에 달한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약 24배 규모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보금자리주택은 취지는 좋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침체와 맞물려 집값 하락을 기대하게 하고 매매 수요를 전세로 바꾸는 등 시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주민들의 의사와 주변 여건을 고려해 개발사업의 규모를 축소하고 경우에 따라 인천 검단2신도시처럼 사업 자체를 백지화하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 건설업계에 대해선 대한주택보증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보증 규모를 지난해 2조원에서 올해 3조원으로 확대하고, 최대 1조8000억원을 투입해 분양가의 절반에 미분양 주택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공급 축소의 효과는 한참 뒤에나 기대할 수 있다. 결국 수요 촉진이 필요하지만 뾰족한 대책은 나오기 힘들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은행에서 집을 살 사람에게 돈을 더 많이, 싸게 빌려주도록 하는 것이다. 총부채상환비율(DTI)이나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등 금융규제를 완화하면 된다. 하지만 이는 가계부채 거품을 돌이킬 수 없이 키울 수 있다. 새 정부 경제팀을 대표하는 현오석 경제부총리와 서 장관,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모두 금융규제 완화에 부정적이다.

 정부는 다만 실수요자면서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구에 한해 DTI나 LTV를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생애 최초 주택 구입에 대해 취득세를 깎아주거나 관련 대출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집을 사줄 때 일정 한도까지는 증여세를 면제해 주는 방안 등도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다. 주택 취득세 감면 기간을 연말까지 연장해 달라는 건설업계의 건의는 재원 부족 탓에 포함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시장의 연착륙에 초점을 맞춰 부분적으로 막힌 곳을 풀어주는 미세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거권을 보장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이번 대책에 비중 있게 반영될 예정이다. ‘주택연금 사전가입제’ ‘보유주택 지분 매각제’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 ‘행복주택 프로젝트’ ‘저소득가구 주택 바우처 제도’ 등이다. 야당도 크게 반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당장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과는 큰 관계가 없다. 분양가 상한제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도 야당의 반대를 넘기 어렵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실장은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려면 정부와 국회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며 “정부 대책이 큰 문제가 없는 한 법제화될 것이란 확신이 있어야 시장이 믿고 따라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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