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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뚫린 뱃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가덕도 앞 바다에서 해군 함정과 충돌한 여수∼부산간 「한일호」의 침몰로 1백명 가까운 선객과 선원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새해 들어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다.
사나운 추위가 몰아친 14일 밤 10시, 거친 파도 속에 휘말려 잠긴 채 수중의 고혼이 된 희생자나 그 유족의 마음을 생각할 때 무어라 위로의 말을 찾을 길이 없다.
해방 후 지금까지 있었던 큰 해난사고를 볼 때 그것이 모두다 1월에 있었던 것은 우연한 일치일까. 53년 1월 10일 여수에서 부산으로 가던 창경호 침몰사고 때는 3백 30여명이 죽고 생존자는 불과 7명에 지나지 않았으며 56년 1월 12일에는 부산서 여수로 가던 태신호에 불이나 1백47명중 65명이 타죽고 22명이 화상을 입었으며 63년 1월 18일 해남∼목포간 정기여객선연호 침몰사고 때는 1백39명중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사람뿐이었다. 강추위 바닷 속에 빠지면 거의가 체온을 잃고 죽어야 하는 것이 동계 해난사고의 처참한 통례이다.
이처럼 몇 해 걸러 비슷한 기간에 비슷한 해역에서 비슷한 여건으로 비슷한 사고가 그치지 않는 것은 어딘가에 잘못된 구멍이 뚫린 채 배를 띄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번 경우만 하더라도 폭풍주의보가 내린 밤바다로 출항한 것이라든지, 승선자 명단 하나 없는 엉성한 취항상태는 도시 승객의 인명을 무엇으로 알고 하는 일들인지 이해가 가지 않으며 감시기관들은 낮잠이라도 자고 있었단 말인가.
또 같이 부딪친 해군함정도 「레이더」 시설을 비롯한 최신기재로 장비가 되었을 것인데 어찌 충돌을 사전에 피하지 못했을까. 상재전장이 나라의 간성된 마음을 가짐이겠거늘 그것이 만고 여객선 아닌 상선이었던들, 결과는 어찌 될 뻔하였던가. 뜻하지 않은 해난으로 차디찬 바다에 잠긴 넋들을 달래는 길은 항해자들의 물샐틈없는 주의와 안전확보를 위한 여러 시설을 강화하는 관계자들의 열의로 다시는 같은 불신을 거듭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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