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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철주의 선택, 공직의 무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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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가 제자리로 돌아간 건 잘한 일이다. 그는 중소기업청장 직을 포기하고 다시 벤처기업인으로 복귀했다. 그의 발목을 잡은 공직자 주식 백지신탁제를 놓고 지금 문제가 있느니, 없느니 논쟁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이번 ‘황철주 소동’의 핵심은 따로 있다. ‘공직(公職)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성공 벤처 1세대인 그가 중기청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기업 경영의 경험을 살려 중소벤처 생태계를 복원할 적임자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는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최고경영자(CEO)로 유명하다. 공고와 전문대를 졸업한 뒤 4년제 대학에 편입했다. 생산직 노동자와 영업사원을 거치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 이 경험을 살려 반도체 장비회사를 설립해 성공신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는 앞으로도 이런 도전의 드라마를 이어가고 싶어한다. 사퇴 회견에서 “경영권 주식을 매각하는 건 책임 있는 경영인의 모습이 아니다”며 주주와 고객에 대한 도의를 내비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는 뼛속 깊이 기업가 정신의 DNA를 품은 경영자임에 틀림없다.

 바로 이 대목에서 고민은 깊어진다. 능력 있는 벤처기업 오너에 공직을 맡기려는 것은 새 바람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현장의 경험은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대기업의 횡포 때문에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중소벤처인이 대-중소기업 상생을 더 치열히 고민하는 법이다. 하지만 이해상충은 벗어날 수 없는 난제다. 벤처 사업가 출신 청장이 만든 정책이 자신의 기업을 살찌울 수 있다는 시비를 피할 길이 없다. 공직 진출은 그래서 어떤 규범이 필요한 거다. 황 대표는 중기청장으로 봉직한 뒤 다시 벤처 오너로 돌아갈 생각을 처음부터 한 것으로 보인다. 비난받을 대목은 아니지만, 생각이 짧았다. 공직의 무게는 그렇게 가벼운 게 아니다. 한평생 쌓은 경험과 관록을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마지막 자리’가 공직이어야 한다.

 황 대표처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영인은 기업을 잘 키워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게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길이다. 그러고도 고위 공직에 진출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다 내려놓고 임하는 게 맞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고위 공직은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챙기기 위한 정거장으로 전락했다. 한자리하고 물러난 전직 장·차관 등이 로펌에서 사실상 로비스트로 활동하며 서민들은 상상도 못하는 큰돈을 챙기는 걸 보면 허탈하다. 박근혜 정부는 초반부터 ‘인사 대란’을 자초했다. 잘못된 인선도 문제지만 어렵게 임명된 이들의 향후 행보도 위태해 보인다. 이런 불신을 불식시키는 건 모두 당사자의 몫이다. 열과 성을 다해 헌신하는 것만이 뻥 뚫린 국민의 가슴을 메우는 길이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또 다른 부귀영화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한다면? 생각만 해도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김 종 윤 뉴미디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