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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15호 31면

중국 친구들과 모임에서 건배용으로 자주 써 먹는 말이 있다. ‘주봉지기천종소(酒逢知己千鍾少) 화불투기일구다(話不投機一句多)’라는 말이다. 뜻 풀이를 하자면 ‘술은 자기를 알아주는 친한 친구를 만나면 천 잔을 마셔도 적고, 말을 나눌 때 뜻이 맞지 않으면 단 한 마디의 말을 섞는 것도 많다’는 것이다. 반주를 곁들인 저녁 테이블 자리에서 이 말을 하며 ‘건배(乾杯)’를 외치면 금세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의기투합(意氣投合)이나 의기상투(意氣相投), 또는 정투의합(情投意合)이 됐다고나 할까.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말만 잘하면 안 될 일도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다.

心心相印<심심상인>

그러나 반대도 있다. 자칫 잘못 했다가는 ‘입은 남을 해치는 도끼(口是傷人斧)’요, ‘말은 혀를 베는 칼(言是割舌刀)’이 되기 십상이다. 말실수 탓에 ‘입은 화(禍)를 부르는 문’(口是禍之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선인(先人)은 그래서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차라리 말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言不中理 不如不言)’고 충고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를 했다. 한·중 양국 정상이 취임을 축하하는 통화를 하기는 이번이 양국 수교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통화에서 박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설명했고, 시진핑 주석은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의 생각을 잘 이해한다”고 대답했다. 다소 추상적인 답변 같다. 그러나 ‘말 없는 가운데 마음과 마음으로 뜻이 서로 통한다’는 ‘심심상인(心心相印)’의 느낌을 갖게 한다.

석가(釋迦)가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였을 때 가섭(迦葉)만이 그 뜻을 깨달아 미소를 지었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 또는 염화시중(拈華示衆)의 의미처럼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뜻이 전해졌다고 보여진다. 동북아의 골칫거리인 북핵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두 나라 정상이 적어도 뜻과 이상이 일치하는 ‘지동도합(志同道合)’의 태도를 보였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앞으로 한·중 정상이 굳이 말이나 글로써 시시콜콜 이런저런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에서 벗어나, 즉 말이나 글에 의지하지 않고도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을 전할 수 있는 불립문자(不立文字) 수준의 신뢰를 쌓게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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