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먹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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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조폭들은 때때로 '영웅'처럼 비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 정치 추문이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어 놓고 있다.

조일환은 두터운 오른 손으로 식칼의 나무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곧 이어 길이가 21센티미터나 되는 이 칼을 귀 뒤에까지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왼손 새끼 손가락을 탁자 위의 나무 도마에 올려 놓았다. 도마는 흰 천으로 덮여 있었다. 둥글고 짧은 그의 손가락은 마지막 마디가 없었다.

그는 "새끼 손가락을 도마 위에 올려 놓고 아주 세게 찍어야 한다."며 칼을 아래로 휘둘렀다. 칼은 새끼 손가락의 남은 부분과 불과 몇 밀리미터도 안 되는 곳에 박혔다. "잘못하면 다른 손가락들이 잘린다." 조일환은 조용히 칼과 도마를 종이상자에 넣고 "이것을 또 쓰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며 싱긋 웃었다.

서울 남쪽에 있는 충청도의 대부(代父)는 그의 칼을 애지중지한다. 지난 해 8월13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해 한국인들의 분노를 샀을 때, 조일환 수하 열세 명이 일본 정부에 메시지를 보냈다.

이들은 서울의 독립공원에서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평평한 나무 작두 위에 새끼 손가락을 올려 놓았다. 텔레비전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이들은 손가락 마지막 마디를 잘랐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손가락 동강을 태극기로 싼 뒤 이를 전달하기 위해 일본 대사관으로 향했다. 경찰이 이들을 제지했고 잘린 손가락들을 압수했다.

이 일은 자주 보기 힘든 별난 사건으로 치부됐고 언론도 단발성 보도로 지나갔다. 그러나 몇 달 전부터 조일환 같은 조직폭력배들이 주기적으로 한국의 일상을 흔들기 시작했다. 돈을 받고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추문을 둘러싼 논란이 장기화되면서 조직폭력배들과 정치인들이 불미스러운 유착 관계를 갖고 있다는 말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일은 지난 해 10월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이, 정치와 폭력을 유착시켜 비리를 저지른 혐의가 유력한 인물과 최소한 두 번 만났음을 시인해야 했던 것이었다.

한국인들은 손가락을 자른 시위자들을 어리석은 국수주의자들로 여기며 비웃었다. 그러나 조폭과 검찰, 대통령 측근 정치인들 사이에 수상한 비밀 거래가 있다는 말에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대통령의 아들과 만난 적이 있는 여운환은 구속됐다. 여운환은 정치인들과 검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해 사업가 이용호를 도우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용호 역시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새로 임명된 특별검사는 지난 달 이용호와 여운환을 심문했고 현재는 부패 혐의를 받고 있는 검사들을 상대로 수사를 하고 있다. 한 국회의원은 이번 추문을 '조폭게이트'라고 이름 붙였다.

그렇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여전히 조폭들에게 매혹돼 있다. 위대한 마피아 신화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한국 조폭, 혹은 '주먹'은 여전히 국민의 '영웅'이다. ('주먹'이란 말은 주먹 싸움을 선호하는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한국 조폭들은 사시미 칼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총은 여전히 거의 쓰이지 않는다.)

'주먹들'은 가장 잘 팔리는 책들의 소재이며 지난 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의 대부분도 조폭물이었다. 실제 세계에서 대부분의 조폭들은 갈취, 매춘, 도박으로 돈을 번다. 그러나 지하 세계를 다룬 영화들은 충성, 희생, 위계질서가 중요했던 소박한 시대를 살아온 구세대의 향수를 자극한다.

대부 조일환은 신사적인 조폭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누구보다 많은 일을 했다. 그는 책 21권을 출판했다. 대부분이 속보이는 자서전적인 이야기로 조폭의 삶을 장황하게 묘사한 것들이다. 물론 책들의 내용은 저속하다. 예를 들어 3백82쪽짜리 책에는 '아, 단지(斷指)! 괴롭고도 즐거운 영광'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장이 있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 책들을 좋아했다. 그의 책 '불의 아들'은 20만 권이 팔렸다.

조일환은 1974년 한 재일교포가 독재자 박정희의 부인을 저격한 후 새끼 손가락을 공개적으로 잘랐다. '단지(斷指)'라고 불리는 이 의식은 1909년 일본 정치 지도자들을 암살하겠다고 맹세하고 손가락을 자른 후 혈서를 쓴 독립투사 안중근 이후부터 사라지지 않고 계속됐다. (일본 야쿠자 역시 손가락을 자른다. 그러나 보통 실책을 보상하기 위해서다.)

조일환의 우상은 일본 식민지 시절 야쿠자와 싸운 전설적인 주먹 김두한이다. "그는 완전한 애국자였다." 조일환은 지난 8월 손가락을 자른 사람들의 가족을 돕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지금도 산 속 버려진 집에서 자며 도주 중이다. (한 한국 경찰관은 이들이 손가락 절단 때문이 아니라 갈취 등의 범죄로 수배 중이라고 말했다.)

대부 조일환은 조폭게이트와 자신이 갖고 있는 정치적 연줄에 대해 말하길 꺼렸다. 그러나 올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들은 사람을 이용한 후 버린다."고 말하며 반감을 나타냈다.

안상민 역시 12월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의 접근을 받았다. 올리브색 스포츠 재킷에 검은 터틀넥, 흰색 구두를 신은 안상민은 단정함 보다는 위협적인 인상을 준다. 그는 세 건의 살인을 교사한 것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마지막 살인 지시는 수감 중에 내렸다. (그는 자신이 현재 젊은이들을 상대로 상담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폭게이트? 안상민은 "그들은 거물 주먹들에게 손 댈 수 없다. 정치 권력과 너무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추문은 이미 김대중 대통령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김 대통령이 조직범죄에 대한 전국적인 단속 방침을 발표했지만 민주당은 지난 해 10월 중요한 보궐 선거에서 완패했다. 신문들과 야당 정치인들은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여운환이 김 대통령의 고향인 전라도 출신의 한 사업가를 돕기 위해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제공하려 했다는 말을 몇 달 동안 흘렸다. 여운환은 십년 전 전라도 광주시 최대의 폭력조직을 운영한 죄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한국에서 여운환처럼 재계나 정계와 어울리는 이른바 '정치깡패'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더욱 커졌다. 언론은 여운환이 전라도 출신임을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전라도는 '주먹들'로 잘 알려진 저개발 지역이다. 과거 군사 정권의 압제 때문에 전라도 정치인들과 조폭들은 서로를 알게 됐다. 때로는 감옥에서 만남이 이뤄지기도 했다. 서울지검 강력부 김규헌 부장검사는 "조폭들은 경호원 역할을 하고 정치인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권력을 잡자 주먹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 부장검사는 "그들은 자신들이 베푼 호의를 돌려받길 원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일 의원이 법을 어겼다는 증거는 없다. 죄가 있다면 교제를 잘못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안상민은 전라도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정부에서 중요한 인물이 됐을 때 주먹들과의 만남을 그만두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주먹들과 친구 관계를 유지한다면 그들은 부탁을 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영화에서 조폭들을 응원할지 모른다. 그러나 주먹들이 실제로 힘을 갖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DONALD MACINTYRE, 서울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