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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새해 새 아침이 밝았다. 생각해 보면 신정이라고는 하나 어제와 같은 오늘이요, 오늘과 같은 내일로서 흐르는 물결과 같아 흘러 멎을 줄 모르는 세월의 흐름을 두고 신정이라 매듭을 지으려하는 것이 오히려 덧없을 사람의 노릇이기는 하나, 그래도 푸짐한 바람과 같은 것으로 가슴이 부푸는 것은 그런 대로의 뜻이 있어서일 것이다.
하루하루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사느라 살다 보면 미끈득한 해는 간다. 어찌 생각하면 하루 아침의 일인 듯도 하고, 또 어찌 생각하면 허구한 세월인 듯도 한 그런 세월의 첫 매듭 머리에 서서 새삼 가슴에 피어오르는 첫날 첫 감회에 젖어 보게도 된다.
사람에 따라서 가슴을 오가는 상념도 갖가지일 것이 얼마는, 그런 하나 하나의 가슴속마다 있을 감회를 접어두고 볼 양이면 한해가 동트는 아침의 푸듯한 이 숨결.
창 밖을 바라면 뒤에 뒤를 잇고 띠를 엮어 흐르는 차의 물결. 보도에는 총총한 사람의 물결. 물결과 물결이 얼여 세월의 흐름을 타고 대하로 흘러 흘러가는 역사의 물결.
옛날 사람의 선인들도 신정쯤 해서 그들이 삶의 의지로 삼았을 동굴 깊숙한 곳에서 어설픈 우릿불가에 둘러앉아 그들대로 다가올 새날의 감개를 엮어 보았을 것이다. 말이 모자라 손짓 발짓도 섞었을 것이다. 그래도 못 다한 속마음들이 있었다면 이야기꽃처럼 피어오르는 꼬리 짧은 불길에 그들의 마음과 마음을 내맡겼을 것이다. 그리고 새날이 밝을 무렵 해서 그들 동굴의 문을 열고 떠오르는 새 아침 해를 그들 나름의 감회로 바랐을 것이다.
품속 깊숙이 지열을 안고 누려왔을 지구의 생에 기생하여 사람이 삶을 누린지 백만년, 그도 자주의 유구를 생각하면 수유의 일. 미끈득 하루 아침의 흐름일시 분명하다. 그러나 수유의, 또 미끈득 하루 아침의 흐름일 망정 유구의 흐름에 잇닿을 흐름이 고자 누리와 함께 분수대도 이 밝은 새 아침을 붓방아를 찧으며 쉼 없을 첫물을 뿜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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