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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커비전] 부상만 키우는 '무조건 훈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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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미국 LA에서 벌어전 골드컵 쿠바와의 경기에서 한국 선수들은 마치 물먹인 솜바지를 입은 듯 답답한 몸놀림을 보여줬다. 기대하던 경쾌한 연결이나 폭발적인 슈팅도 없이 흐느적대며 간신히 비긴 것이다.

왜 한국 선수들의 몸이 무거웠을까? 또 왜 기대를 한몸에 받던 스타들이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며 팀 전술이 꼬일까?

이에 대해 필자는 황선홍.이민성.이동국.이영표.최태욱 등 주선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으로 인해 팀 전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2년 전 이맘 때 미국에서 열린 골드컵 때도 한국 축구는 부진했다. 캐나다.코스타리카와 무승부를 이뤄 예선 탈락했다.

당시 탈락의 가장 큰 이유는 시차적응 실패와 컨디션 난조 때문이었다.컨디션 난조는 한국 축구의 최대 기대주 이동국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안겨줬다.

고종수.안정환과 트로이카를 이루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이동국은 캐나다와의 예선 첫 경기를 앞둔 연습 과정에서 빗물에 젖은 무거운 볼을 슈팅하다 무릎 부상을 입어 캐나다전에 결장했고, 캐나다전 무승부의 부담은 붕대를 감고 코스타리카전에 출전하는 무리수를 두게 했다. 이 무리수는 잘 나가던 이동국을 기나긴 슬럼프의 나락으로 빠뜨렸다.

부상은 경기력에 치명적이다. 또 선수 수명을 단축시키는 무서운 함정이기도 하다. 지난 프랑스 월드컵 때 황선홍의 부상이 대표적인 경우다.황선홍의 결장은 한국팀의 공격력 약화와 더불어 경기력 저하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대부분의 선수가 늘 부상의 공포 속에서 선수 생활을 영위해 가고 있다. 부상의 가장 큰 원인은 피로로 인한 집중력 저하다. 한국 축구가 부상으로 인한 추락을 피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트레이닝을 해야 한다.

한국 축구의 잘못된 훈련 과정은 선수들을 무방비 상태로 부상의 지뢰밭으로 내몰고 있다.'연습 많이 하는 팀이 이긴다'는 슬로건을 앞세운 무지한 일부 지도자들은 선수들이 소화할 수 없는 엄청난 운동량을 주문하며 과도한 훈련을 시키고 있다.

"나는 현역 시절에 잠도 자지 않고, 애인도 만나지 않고, 매일 훈련만 해서 성공했다"는 '비과학적 경험'을 앞세워 선수들을 부상으로 내모는 것이다. 이에 따라 10, 20대 선수들의 신체적인 연령은 중년에 가깝게 된다.

과학적인 트레이닝의 요체는 '휴식'과 '보충'이다. 즉 훈련-경기-훈련-경기로 잘못 짜인 프로그램을 훈련-경기-휴식-보충의 이상적 프로그램 사이클로 바꿔야 부상을 예방.방지하고 경기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 있다.

필자는 간혹 부상에 대한 천적은 '피로'가 아니라 '무지한 지도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볼 때도 있다. 일부 대표 선수들의 반복된 부상은 이미 어렸을 때의 부상이 재발되는 경우가 많다. 월드컵 16강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국.폴란드.포르투갈이 아닌 부상과의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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