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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공직자, 성접대 장면 찍힌 동영상 받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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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강원도에서 건설업을 하는 A씨(54)는 한 달여 전 자신의 측근에게 충격적인 얘기를 털어놨다. 이 측근이 전한 바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1월 말 휴대전화로 동영상 한 편을 보냈다. 수신자는 사정기관 차관급 고위 공직자. 동영상에는 이 공직자가 유흥주점에서 성접대를 받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고 한다. 동영상을 받은 공직자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가 며칠 뒤 “우리 이러지 맙시다”라는 답신을 보내고는 연락을 끊었다는 것이다. 18일 중앙일보와 만난 이 측근은 “A씨는 건설시행업으로 돈을 많이 번 재력가인데 최근 골프장 건설을 하다가 자금이 달리자 30억원가량의 투자 유치가 필요했다. 이에 가끔 접대를 했던 공직자를 통해 대기업 등에서 투자를 받으려고 연락을 했다. 그런데 그가 전화를 받지 않자 홧김에 문제의 동영상을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보름 후 A씨는 서울 서초경찰서에 전격 연행됐다. A씨 측근은 “처음엔 그 동영상 전송 건 때문에 보복 수사를 당하는 것으로 알았다. 알고 보니 채권·채무 관계로 다툼을 벌이던 여성 사업가 B씨가 강간·사기 등 혐의로 고소를 한 것 때문이었다”고 했다. 실제로 B씨는 고소장에서 “A씨가 내게 약물을 먹이고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 그걸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찍어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빌미로 현금 15억원과 고급 외제 승용차를 빌려가 돌려주지 않고 공기총과 일본도로 위협했다고도 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A씨의 강원도 별장을 압수수색하면서 그를 체포했다. B씨가 지목한 공기총과 일본도도 확보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진술이 엇갈려 성폭행 혐의는 입증하지 못했다. 경찰은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두 달여 조사 끝에 경찰은 지난달 A씨에게 불법무기 소지 혐의만을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가 맡고 있다. 이때 동영상 사건도 같이 묻히는 듯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수사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B씨가 A씨의 차 안에서 성폭력 동영상이 담긴 CD를 발견하면서라고 한다. 자신을 협박하기 위해 찍어놓은 성관계 동영상은 물론 다른 여성들과 유력 인사들 간 동영상도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B씨는 이런 사실을 주변에 털어놨고, 경찰이 이를 알게 되면서 내사의 단초가 됐다.

 A씨는 2000년대 중반 건설시행업을 해 큰돈을 번 재력가로 알려졌다. 서울 목동 등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서울 인근에 골프장을 건설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건설경기가 악화되면서 현금 유동성이 부족해졌고 자금난에 시달리던 중 투자자들로부터 개발비 7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고소를 당한 상태다.

 경찰청이 A씨 사건에 대해 본격 내사에 착수했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18일 “A씨 사건을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배당하고 내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성접대 진위 파악과 함께 A씨의 다른 불법행위에 대해 광범위하게 조사할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범죄 혐의가 확인되면 곧바로 내사에서 수사로 전환키로 했다.

 앞서 경찰청은 A씨가 전·현직 고위 공무원, 병원장, 금융계 고위 인사 등을 대상으로 2009년 하반기부터 2년여 동안 강원도 원주의 호화별장에서 술자리를 갖고 성접대를 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성접대에는 유흥업소 종업원이 아니라 주부, 사업가, 예술가 등 일반인 10여 명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미 B씨를 비롯한 일부 여성을 접촉해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수사 관계자는 “여성들의 진술이 일관성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히 A씨의 강원도 별장에서 만난 사회 고위층 인사들이 누구였는지, 그들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일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여성은 B씨처럼 A씨에게 약점이 잡혀 어쩔 수 없이 별장까지 따라가 접대를 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 석연치 않은 내사 착수

경찰의 내사 착수 방침을 둘러싸고 의문이 일고 있다. 경찰 수뇌부와 일선 수사팀 간에 입장 차이가 작지 않고 내사 착수 여부를 놓고 갈등 조짐이 있다는 것이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이날 “성접대 의혹은 아직까지 확인된 게 없고 성접대 동영상도 확인된 게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일선에서 동영상을 확보했다고 복수의 경찰이 전했다. 특히 최근 공직자 인사 때 청와대 측이 경찰청 고위층에 인사 검증 차원에서 관련 사안을 문의하자 “동영상도 없고 전혀 내사도 하고 있지 않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불과 1주일 만에 당초의 입장이 번복됐다. 경찰 수뇌부가 이번 사안을 덮으려 하자 일선에서 반발하면서 사태가 반전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강현·윤호진 기자

◆ 건설업자 A씨의 성접대 의혹 사건 개요

▶2009년 말∼2011년 말 A씨, 사회 고위층 성접대하며 일부 동영상 촬영

▶2012년 11월 A씨, 고위 공직자에게 동영상 발신

성접대에 동원된 여성 사업가 B씨, A씨를 강간 등 혐의로 고소

▶2012년 11월 A씨에 대한 경찰 조사 진행(압수수색 포함)

▶2013년 2월 경찰, A씨의 강간 혐의에 대해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 송치

B씨, A씨 차 에서 성접대 동영상 확보

경찰, B씨 지인 등으로부터 첩보 입수. 성접대 동석 여성들의 진술도 확보

▶3월 초 경찰청 간부, 청와대에 “동영상 없고 내사도 안 한다”고 보고

▶3월 18일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사건 배당하고 본격 내사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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