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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탄 뚫고 피어난 뜨거운 전우애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글래디에이터'의 리들리 스콧 감독이 고대 로마의 검투사에서 1993년 아프리카의 소말리아로 눈을 돌려 만든 신작이 '블랙 호크 다운'이다.

로마의 장군에서 노예로 전락했던 한 인물의 인생유전을 영웅적으로 그린 '글래디에이터'의 웅장한 화면에 깊은 감명을 받은 관객이라면 '블랙 호크 다운'에 거는 기대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블랙 호크 다운'의 '현재적 의미'는 각별하다.2천년 전의 역사를 대형 서사시로 엮은 '글래디에이터'에서 각별한 정치적 함의를 찾는 게 무리라고 인정하더라도 새 영화는 기껏해야 8년 전의 국제 정치를 다루고 있기 때문. 하지만 평가는 어렵다.

특히 지난해 9.11 뉴욕 테러 사건 이후 관심이 고조된 제3세계 정치에 대한 미국인의 시각을 우리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하려 들어도 선뜻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블랙 호크는 미국 시코르스키사에서 만든 병력수송용 헬리콥터를 말한다. 값만 6백만달러(약 78억원) 에 달하는 첨단 무기다. 영화는 93년 소말리아의 무장 민간대장이었던 모하메드 파라 에이디드의 최측근을 납치하기 위해 급파됐던 미국 특수부대의 활동상을 그리고 있다.

제목의 '블랙 호크 다운'은 말 그대로 블랙 호크가 추락했다는 뜻. 미군은 한 시간 예정으로 작전을 펼쳤으나 뜻밖에 블랙 호크 두 대가 떨어지면서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 영화는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동료 한 명이라도 남김 없이 구출해내려는 미군 병사들의 뜨거운 전우애를 조명하고 있다.

'블랙 호크 다운'은 장르상 대형 액션극이다. 생사를 같이 했던 병사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미래를 과감히 던져버리는 미군 특수 부대원들의 용맹스러움을 부각하고 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작품의 절반 이상을 이들 병사들의 동료 구출작전을 상세하게 묘사하며 전장에서 꽃피는 동지애를 스케일 큰 영상에 담아내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이번 영화에선 배우들이 부각되지 않는다. 이완 맥그리거.조시 하넷.톰 시지모어.에릭 바나 등 스타급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하지만 영화는 각 배우의 개성보다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뭐랄까. 영화는 극한 상황에서도 결코 동지를 포기할 수 없다는 휴머니즘을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남는다. 미군 이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소말리아 병사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럽다.때문에 일부 급진적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선전 영화'로 폄하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그처럼 일방적이지만은 않아 보인다. 죽어가는 동료를 구하려고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는 병사들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재단하긴 어렵다는 의미다. 비록 그 주체가 지구촌 유일의 '슈퍼 파워'인 미국이라 할지라도.

이번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하게 나눠질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서두에 소개되는 플라톤의 말,즉 "전쟁은 죽는 자에게만 끝난다"는 말의 진의가 부담스럽다. 15세 관람가. 2월 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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