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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시다바리'는 가장 듣기 싫은 말-이젠 취업도 만만치 않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남자 간호사가 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올해 진행한 제53회 간호사 국가시험에서 남자 응시생 1115명 중 1019명이 합격해 사상 처음으로 합격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올해 전체 남자 간호사수는 6202명으로 6000명을 돌파했다.

간호대학에 입학하는 남학생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2000년 1.8%(662명)에 불과했던 남자 간호학과 학생은 2011년 13.0%(7968명)로 12배 늘었다. 국군간호사관학교도 지난해 처음 남자 사관생도 8명을 선발했다. 남자 간호사들의 병원 내 근무분야도 수술실·회복실·응급실·중환자실 등 특수파트에서 최근 일반병동에 배치되는 경우가 늘고 있는 등 다양해지고 있다.

국내 남자 간호사 6천명 시대를 맞아 오는 4월 20일에는 남자간호사회가 창립총회를 갖는다. 남자 간호사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까페도 활성화돼있다. 남자 간호사를 꿈꾸는 사람들 (http://cafe.daum.net/ghkdalstn)은 총 5만 9천여명의 회원이 있다. 백의의 천사나 나이팅게일은 더 이상 여자 간호사의 전유물이 아니다. 남자 간호사 6천명 시대를 맞아 중앙일보헬스미디어는 ‘남자 간호사 시대’를 주제로 기획 연재를 시작한다. 첫 번째 주제는 ‘간호학과에서 남학생으로 산다는 것’이다.

간호학과 개설 이후 남자 학생회장 최초

▲ 중앙대학교 간호학부 주은규 학생회장. 김수정 기자

중앙대학교 간호학과에서는 올해 최초로 학생회장에 남학생이 선출됐다. 3학년에 재학 중인 주은규(22·서울시 성북구)씨다. 13일 오후 6시 중앙대학교 정문에서 주씨를 만났다. 조교실에서 간호사를 꿈꾸는 남학생이라는 말만 들은 터라 여리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생각했다. 하지만 첫인상은 의외였다.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체육학과 학생 같은 인상이었다.

주씨는 현재 3학년이다. 중앙대학교 간호학부 3학년 학생은 총 70명으로 남학생은 총 5명이다. 아래 학년으로 가면 더 남자 학생이 많아진다. 전체 간호학부 인원은 총 750명. 이 중 남학생은 200여명에 이른다. 한 학년 당 40~50명 정도는 남자인 셈이다. 주씨는 “간호학부에서는 남학생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입학했던 때보다 남자 학생이 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학생 늘어나면서 남학생 위한 커리큘럼 생겨

간호학과에 남학생이 늘어나면서 학과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일단 커리큘럼이 크게 변했다. 남학생들을 위한 특강 등이 열리는 게 대표적인 예다. 중앙대학교 간호학과 권혜진 교수는 “작년에는 늘어나는 남학생들을 위해 제주 한라대에 재직하고 계신 남자 간호사 선생님을 초빙해 특강을 진행했다. 반응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남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롤모델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마련된 자리였다.

주은규 씨가 중앙대학교 간호학과에서 남자로는 처음으로 학생회장이 된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권혜진 교수는 “지금까지 늘 학생회장은 여학생이 했었다. 주은규 학생부터 남자 학생이 처음 학생회장을 맡게 됐는데 처음엔 남학생이 과연 여학우들 사이에서 잘할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성 특유의 리더십과 추진력 등을 발휘해 여학우들과 융화하는 모습에서 권 교수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점들을 많이 발견했다. 권 교수는 “간호학과 내에서 남학생들이 여러 역할들을 잘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여학생들에게도 남자 간호사 특이한 케이스 아냐

남자 간호사의 이미지에 대해 이야길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한고은(21), 주은규(22), 김혜빈(21), 윤예은(21) 김수정 기자

남자 간호사를 바라보는 동료 여학생들의 생각은 어떨까. 중앙대학교 간호학과 학생회실을 찾았다. 2학년에 재학 중인 윤예은(21), 김혜빈(21), 한고은(21) 학생에게 남자 간호사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여학생들 역시 간호학과에서 남학생의 존재는 그리 특이한 케이스는 아니라고 말했다. 남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어느 정도일까. 김혜빈 학생은 “남학생들이 처음에는 공부를 잘 안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세심함은 좀 부족하지만 한 학년에서는 탑을 차지할 정도로 공부를 잘 하는 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여학생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는 것. 김혜빈 학생은 “실습을 할 때나 MT를 가서 힘을 써야 한다거나 궂은일이 생기면 마다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남학생이다.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여학우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법, 노하우 생겨

남자 간호사가 늘고 있다. 남자 간호사의 활동 영역은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김수정 기자

금남의 직업으로 여겨졌던 간호사 분야에서 남성으로 일하면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뭐가 있을까. 중앙대학교 간호학과 권혜진 교수는 “수술실이나 응급실(ER), 집중치료실, 중환자실 등 특수 파트에서는 힘을 쓰는 일이 상대적으로 많다. 환자를 이동해야 한다거나 포터블 장비를 옮기려면 무거워서 힘이 많이 드는데 이때 남자가 빛을 발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학생의 경우에는 모성성 등이 있어서 꼼꼼하고 세밀하게 일을 하는 장점이 있다. 반면 남자 간호사는 시스템적이고 전반적인 면들을 아울러 보는 능력이 강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여학생들 사이에서 남학생으로 살면서 힘든 점은 없을까. 주 회장은 의외로 장점이 많다고 말했다. 가장 좋은 건 여자를 이해하게 됐다는 것. 주 회장은 “지금은 눈치가 많이 빨라졌죠.(웃음) 가끔 여자 애들이 이유 없이 화를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젠 그게 다 이유가 있어서라는 걸 알게 됐어요. 요즘 남녀의 차이를 알고 이젠 완벽하게 적응하지 않았나 싶어요”라고 말했다.

연애 코치 등의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도 한다. 주씨는 “여학우들이 많다 보니 연애 코치를 잘 해줘요. 제가 현재 연애를 하고 있는데 눈치가 부족해서 여자 친구한테 욕을 먹을 때가 많거든요. 그럴 때면 여학생들이 이럴 땐 이렇게 해라 아니다, 이렇게 조언을 해주죠. 여자들 사이에 있다고 해서 여성화가 되는 건 아니고, 그냥 간호학과에서 남녀 성 구분 자체가 별로 없는 편이에요”라고 말했다.

남자 간호사는 100% 취업? 옛말이죠

▲ 중앙대학교 통합간호실습센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주은규 학생회장. 김수정 기자

남학생들이 간호학과에 많이 진학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최근 남자 간호사가 급증하는 이유로 취업난을 꼽는다. 취업난 속에서도 초봉이 높고 다른 학과에 비해 비교적 취업이 쉬운 간호사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병원측도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부담에서 자유롭고 체력이 상대적으로 좋아 남자 간호사를 선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엔 남자 간호사가 취업이 잘 된다는 건 옛말이다. 남자 간호사에 대한 허상도 많다. 주 회장은 “2004년도까지만 해도 남자 간호사가 귀했지만 최근엔 남자 간호사도 흔하다. 이 때문에 여학생들과 동등하게 경쟁을 한다. 1학년부터 꼼꼼하고 세밀하게 학점을 관리하는 여학생들과 경쟁하려면 이것저것 힘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사 놓는 게 좋아서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하는 학생도 있는데 사실 병원에서 주사 놓는 일은 많지 않다. 오히려 혈압, 체온 재는 걸 더 많이 한다.

남자 간호사의 길은 멀고도 힘든 일 ‘후배들 이것만은 알아야’

공부량도 상당하다. 이 때문에 주 회장은 “취업 걱정을 줄이기 위해 간호학과에 입학한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대형병원에 취업을 하려면 학점, 토익 등 준비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삼성서울병원 같은 경우에는 SSAT 같은 시험도 따로 준비를 해야 한다. 주 회장은 “보통 중간, 기말 고사 시험 3주 전에는 늘 밤을 샐 정도로 공부량이 많다. 간호사 국가고시도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계열 특성상 도제적인 특성이 많다. 주씨는 “약간 고등학교의 연장선상이라는 느낌도 있다. 1학년 1등이 2학년 꼴등보다 못하다는 게 이곳 진리다. 즉 오래 버티는 것, 경험이 중요하다. 이런 상황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간호학과에 입학하면 실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도 포기하는 남학생도 많다. 주 회장은 “학과 분위기를 못 버티거나 적성에 안 맞다는 이유로 전과를 하거나 편입, 자퇴 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 내성적인 성격보다는 여학우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고립되지 않게 외향적인 성격이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남자 탈의실 없어 매일 화장실 가서 간호복 갈아 입어

여자가 많은 간호사 사회에서 남자로 살면서 불편한 점도 있다. 일단 병원에 남자 간호사 탈의실이 없다는 것. 주 회장은 “옷 갈아 입는 게 너무 힘들다. 병원에 남자 전용 탈의실이 없다. 이 때문에 남학생들은 화장실에 달려가서 간호사복을 갈아입고 온다. 전국에 서울대병원 딱 한 군데에 남자 간호사 전용 탈의실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꼭 병원 리모델링을 할 때 남자 간호사 탈의실을 좀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의사 씨다바리’라는 말 가장 듣기 싫어

병원에서 실습을 하다 보면 주변의 시선이나 친구들의 장난같은 말에 상처를 입을 때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남자 간호사는 의사 씨다바리 아니냐’는 말이다. 주씨는 “의료법에 간호사의 역할은 의사의 업무를 보조하는 사람이라고 명시돼 있긴 하다. 하지만 보조라는 것 자체가 수직적인 구조에서 보조를 하는데 아니라 수평적인 입장에서 보조를 하는 거다. 씨다바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씨는 한의사법, 약사법은 따로 있는데 간호사법이 따로 없는 것게 부당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병원에서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간호사 보고 진로 결정

주씨가 남자 간호사를 꿈꾸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주씨는 고등학교 시절 여느 학생들처럼 평범한 학생이었다. 세명컴퓨터 고등학교를 다녔던 주씨는 고등학교때만 해도 뭘 해야 할지 구체적인 꿈이 없었다. 고등학교도 장학금을 주겠다는 제안이 있어서 선택했던 터였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시절 간호사를 꿈꾸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신종플루로 고대 안암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수액을 맞다가 축축해서 깨어났더니 링겔이 빠져 피가 나고 있었다. 팔을 붙잡고 스테이션까지 걸어갔더니 간호사 선생님께서 프로답게 일을 처리해줬다.

간호사의 눈빛에 망설임이나 불안함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 잘못되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주씨는 그때 간호사가 처음으로 멋있어 보였다. 그때부터 간호사의 꿈을 키웠다. 간호사 보다 의사나 다른 보건의료계열 직종도 있는데 왜 간호사를 택했는지를 물었다. 주 회장은 “사실 공부를 잘 했으면 의대를 갔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환자와 접촉하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의사보다 간호사가 많다. 간호학을 공부하고 실습을 하면서 환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간호사라는 직업이 천성이라고 믿어서다”라고 말했다.

레크레이션과 간호 접목한 전문 간호사 꿈꿔

주씨는 레크레이션 전문 간호사를 꿈꾼다. 간호와 레크레이션을 융합해 새로운 학문으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레크레이션 간호사라는 게 따로 있는 영역은 아니다. 주씨는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을 하면서 다른 학교 축제 mc를 보다가 아는 분들을 통해 행사 mc 활동을 하게 됐다. 레크레이션을 통해서 사람들이 즐거움을 느끼고 치유된다는 걸 느꼈다. 특히 우울증이 있거나 치매 환자들에겐 이런 레크레이션 간호가 좋은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미니인터뷰) 남자 간호사를 꿈꾸는 주은규 학생회장의 못 다한 이야기

- 학교 수업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 같다.

“전국간호대학생연합 서울인천부권역장을 맡고 있다. 현재 회원은 약 7만명 정도다. 임원진은 총 15명 정도인데 지역별로 회의를 하고 전체 회의를 하는 경우도 많다. 원래는 대한간호협회 산하기관이었는데 지금은 자체 기구로 독립했다. 간호대 학생의 권익을 찾는 일들을 하고 있다.”

- 군입대 문제로 남자 간호사가 불리하지는 않나.

“남자 간호사는 중간에 의무병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군대를 가는 중간 텀이 생겨서 고민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보통 서울 시내에 대형병원에 선취업을 하고 군대를 가면 나중에 다시 취업을 시켜 주는 식의 제도가 있다. 간호 장교를 지원해 가기도 한다. 육해공 지원했다 떨어지면 의무병으로 지원한다.”

-존경하는 간호사가 있나.

“현직에 있는 간호사 중에서는 중앙대병원에 근무하시는 지순주 간호사님을 존경한다. 중앙대학교 간호학과 선배다. 나이가 60이 넘으셨는데도 후배를 챙기고 환자를 가족처럼 대하는 태도가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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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선 기자 charity19@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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