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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봉, 선택권 없는 선택진료비 한 해 2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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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생후 19개월 된 하원이는 오른쪽 심장 판막 두 개가 망가진 채로 태어났다. 지금까지 13번 수술했고 5000만원을 썼다. 엄마 김성은(32·인천광역시 연수구)씨는 애를 돌보느라 직장을 그만뒀다. 남편(33·회사원) 월급(300만원)으론 안 돼 양가 부모에게서 2000만원을 받았고, 빌라 전세금(82.5㎡, 9000만원)을 빼 쓰려 작은 집을 구하고 있다. 전형적인 의료빈곤층(메디컬 푸어)이다.

 건강보험공단은 소득의 10% 이상을 의료비로 쓰는 현상을 ‘재난적 의료비(의료빈곤)’로 규정한다. 전체 가구의 20.6%인 227만 가구(2011년)가 해당한다. 중병을 앓으면 중산층이 의료빈곤층으로 떨어진다. 매년 건보료를 올려 건보 보장을 늘리고 있음에도 의료빈곤층이 생기는 이유는 비보험 진료비 때문이다. 이 중 가장 큰 비중(26.1%)을 차지하는 게 선택진료비(특진료)다. 2조1690억원(건강보험공단 자료, 2010년)에 달한다. 지난해 1~6월 하원이 부모가 낸 돈(2243만원)의 56.5%가 특진료다. 박근혜 정부가 암·심장병 등 4대 중증질환 진료비를 100% 보장하되 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1~5인실)·간병비는 제외하기로 했는데, 이 세 가지를 내버려두고는 의료빈곤을 해결할 수 없다. 선택진료는 숙련도 높은 의사를 선택하되 20~100% 더 지불하는 제도다.

 하지만 선택진료에서 ‘선택’은 사라지고 사실상 필수 코스가 됐다. 진료 의사의 75~80%(법정 허용 한도)가 특진의사로 짜여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본지 조사 결과, 한양대병원은 선택진료 가능 의사 135명 중 108명(80%)이 특진의사였다. 서울아산·경희대병원은 79.7%, 신촌세브란스병원은 79.6%였다. 하원이 엄마 김씨는 “심장병 의사 중 특진의 아닌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최근 선택진료비 폐지 운동을 시작해 740명의 서명을 받았다. 이 단체 안기종 대표는 “대형 병원 중증환자는 선택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며 “이를 폐지하고 의료의 질을 평가해 잘하는 병원에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택진료제를 폐지하면 큰 병원 쏠림 현상이 심화될 거라는 우려도 있다. 서울대병원 허대석(종양내과) 교수는 “영국은 환자가 주치의 의견을 무시하고 큰 병원으로 가면 환자가 전액 부담한다”며 “이런 장치를 만들지 않고 선택진료를 폐지하면 통제 불능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큰 병원 쏠림 억제 장치를 만들고 선택진료 의사 범위를 대폭 좁히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장주영·배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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