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70년대의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신파극이든 명화든「러브·스토리」의 종말이 가까워오면 흔히 이런 대사가 나온다.『저는 벌써 옛날의 숙이가 아닌 걸요』-그 옛날의 애인 그대로이기를 바라고 있을「현상유대」적 사고에 대한 폭탄선언 같은 것이다. 역사의 움직임이란 육안으로는 부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시침]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변화를 기회나 진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기가 일쑤다. 전후시대의「온상적」감각에서 벗어나 현실의 역학을 체득해야한다.
최근 유엔 정치위원회의 동향은 움직이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불감증에 찬물을 끼얹어 준 느낌이다.「유엔」대책으로서의 통일문제가 가벼운 도전에 부딪친 것이다.「처치] 미 대표도「기니] 안 제의에 대한 표결결과가 38대 37로 나타남으로써 종래의 입장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게되었다고 지적했다. 국회의「통일문제공청회」도 열려 통일문제 연구기구의 설치를 이제서야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들이 시류에 둔감해져서 김장생각을 잊고있던 어느 날 밤, 갑자기 한파가 내습하여 무우 배추를 얼려버리는 그런 변덕처럼 밀이다.
북괴 측의「새로운 형태」의 통일공세는 시작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8·12성명 후 소위「자주성」을 내걸고「대 중공사대」에서「대 소련사대」외교로 갈아탄 북괴는 「유엔대책 없는 중공」의 외교노선에서는 못했던 것을, 그것이 있는 소련의「채널」을이용해서 선전공세를 펼 것은 뻔한 일이다.
「선 건설 후 통일」의 원칙은 백 번 옳다. 70년대에 가서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착수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통일문제」가 건설 후로 미루어진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통일의 시기는 70년대로 잡는다손 치더라도 통일문제는 목전에 심각하게 박두했다. 우선「유엔」에서, 국제정치 면에서, 문제가 있으면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해결되기 전에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검은 그림자를 떨어버리려고 달음질친 어리석은 사람도 아래를 내려다보고 놀랄 것이다. 그것이 아직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어려운 통일문제를 잠시 망각하거나 무시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문제 그 자체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