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고 예방 시연회 11시간 만에 ‘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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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4일 오후 8시55분쯤 전남 여수시 화치동 국가산단 내 대림산업 2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8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중경상을 입어 여수 여천 전남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부상자 상당수가 의식을 잃은 중상자여서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사고는 폴리에틸렌을 담아 둔 500t급 대형 탱크를 보수하기 위해 용접작업을 하던 중 발생했다. 근로자들은 “용접작업 중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가스가 폭발했다”고 말했다. 폭발로 인해 불이 났으나 출동한 119 대원들에 의해 10여 분 만에 진화됐다.

 폭발사고가 발생한 곳은 합성수지나 화학섬유 등을 만드는 데 쓰이는 화약 소재인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을 저장하는 시설이다. 대림산업 측은 “지난 13일부터 조업을 중단하고 사일로(silo·저장탑) 주변 전기설비 보수작업 도중 사고가 났다”고 밝혔다. 이날 작업자는 대부분 대림산업의 협력업체인 Y업체 소속 근로자들이다.

 경찰은 폴리에틸렌 탱크에 남아 있던 산화수소 가스가 용접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주변 인화물질과 반응해 폭발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또 공장 관계자와 근로자들을 상대로 작업 전에 잔류 가스가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는 등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켰는지도 파악하고 있다.

 이날 사고는 전석종 전남지방경찰청장과 여수시 부시장, 산단 공장장협의회장 등 각 기관 단체장 20명이 여수산단에서 ‘유해화학물질 누출사고 대비 간담회 및 시연회’를 한 지 11시간여 만에 발생했다.

 1967년 조성된 여수산단에는 GS칼텍스, LG화학, 여천NCC 등 석유화학업체 60여 개를 포함해 총 220여 개 기업이 있다. 특히 공장 대부분이 유독물질을 취급하고 있는 데다 40년 이상 된 노후 시설로 불안한 ‘화약고’라는 말을 들어왔다.

 여수산단에서는 그동안 인명피해 사고가 잇따랐다. 2000년 8월 호성케멕스㈜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7명이 숨지고 1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89년 10월에는 럭키화학 공장 폭발로 16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쳤다.

  이 밖에 크고 작은 200여 건의 폭발, 화재, 가스 누출 사고로 1000여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한국가스안전공사 등 관계기관이 나서 안전점검을 시행했지만 안전과 직결된 부실 사례는 끊임없이 적발됐다.

 여수지역 환경단체들도 “여수산단은 석유화학공장이 밀집돼 사고가 날 경우 대형 사고로 번질 가능성이 높지만 직원들의 안전의식이나 근본적인 대책이 미흡하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해 왔다.

최경호 기자

◆ 여수산단 화재·폭발사고 일지

- 1989년 10월 : 럭키화학 폭발. 16명 사망, 17명 부상
- 1995년 2월 : 유독가스 누출. 15명 부상, 80명 대피
- 2000년 8월 : 호성케멕스 폭발. 7명 사망, 18명 부상
- 2001년 10월 : 호남석화 나프타탱크 화재. 3명 사망,1명 부상
- 2003년 10월 : 호남석화 폭발. 1명 사망, 6명 부상
- 2004년 8월 : LG화학 폭발. 1명 사망, 1명 부상
- 2012년 6월 : 한국실리콘 가스 누출. 49명 중독
- 2013년 1월 : 여수산단 차량정비소 폭발. 2명 부상
- 2013년 3월 14일 : 대림산업 폭발. 8명 사망 11명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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