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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에 실 가듯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공자의 다음 가는 어진 분이라고 하여 아성으로 추존 받는 맹자는 그 스스로도 학행이 놀라왔거니와 어머니도 상당했던 모양이다. 맹자의 교육환경을 위해서 세 번이나 집을 옮겼다고 하여 「맹모삼천」은 오랜 얘기로 전해온다. 전기중학입시를 앞두고 이른바 치맛바람이 한창인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맹모의 고사도 치맛바람의. 일종이라 할 수 있겠으니, 자모들의 과잉교육열도 어제그제의 일이 아닐뿐더러 탓만 할 것도 아닌가싶다.
생물은 영양과 생식의 생리과정을 통해서 삶을 이어가는 것이겠지만 사람이 다른 것은 교육에 힘입어 사회와 문화의 오랜 지속을 꾀하는 것이다. 말을 바꾼다면 사회는 스스로의 영속을 위해서 교육을 통해 새로 태어나는 세대들을 동화하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 실정은 교육을 통해서 동화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스포일」한다고 밖에는 달리 생각할 도리가 없다. 중학입시는 커녕 유치원에서 대학까지의 허다한 입시의 관문을 위해 하고 한날을 골몰해야 한다.
그 나머지가 또 취직시험의 관문이다. 한고비 한고비가 다 바늘구멍을 들어가는 낙타의 고초다.
자모는 바늘구멍을 향해 치맛바람을 일으켜야하고, 각급 담임은 스스로의 값과 학교의 명예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치맛바람에 곁들여 부채질도하고 키질도 하게 마련이다. 그러노라면 바늘구멍은 날이 갈수록 좁혀지고, 낙타 등에는 부담의 혹이 더 늘어만 간다. 급기야 낙타는 스스로 진 등의 혹 무게만으로도 쓰러지게 된다. 언감생심에 바늘구멍이리요.
지금 중학입시를 앞두고 어린이들의 불상사가 잇따르고 있다. 마음의 부담을 못 이겨 집을 나간 세 어린이가 있었고 1년을 재수하다가 입시원서를 내고는 교문 앞에서 실성한 어린이의 뒤를 이어 부모마저도 맑은 정신을 잃어 한집안이 정신병원에 들게 되었다는 보도도 있다.
이러다가는 입시독존, 교육부재의 꼴이 되는 날도 멀지 않았다고 하면 과언일까. 「바늘에 실 가듯」 그런 교육행정의 기틀을 바로잡을 역군이 이 땅에는 그래 한사람도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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