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 공비 → 테러 → 포격… 60년간 470건 도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올해는 한국전쟁 정전(停戰)협정(1953년)을 맺은 지 60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지난 60년 동안 북한의 도발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무장공비 침투, 암살, 테러, 해상도발, 폭격 등 다양한 방법으로 470여 건의 도발을 감행했다. 통일부 등에 따르면 북의 도발로 사망한 군·경·민간인은 최소 310여 명, 국내외에서 납치된 인원은 3811명(2009년 발간 정부 통일백서)으로 추산된다. 연평균 7.8회 도발에 5.2명이 사망한 셈이다.

 ◆공비침투·암살(1960~70년대)

전후 복구 시기인 1960~70년대 북한은 ‘폭력혁명 추진’ 전략에 따라 무장공비로 후방지역을 교란하고 남한 반공정권 요인 암살을 노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노린 68년 1·21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사건과 70년 국립묘지 현충문 폭파 사건, 74년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이 대표적이다. 76년 발생한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등에서 보듯 북한은 호전적으로 도발을 일삼았다.

 ◆대형테러(1980년대)

80년대 들면서 북한은 앞으로는 평화공세를 펴며 뒤로는 대형 테러를 감행했다. 80년대 말 남북고위급 회담을 추진하는 동시에 아웅산 폭파사건과 KAL기 폭파사건을 일으켰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노린 83년 10월 미얀마 아웅산 테러로 서석준 부총리 등 17명이 사망했고, 87년 KAL기 폭파로 승객과 승무원 등 115명이 사망했다.

 ◆잠수함 침투(1990년대)

북한은 90년대 들어 핵·미사일 등 비대칭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잠수함 도발을 감행했다. 94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탈퇴하며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했을 당시 미국이 영변 폭격까지 검토하며 한반도는 준전시상태까지 갔다.

북·미 간 제네바 합의로 북핵 문제가 임시 봉합됐지만 북한은 도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96년에는 강원도 전국체전에 참석할 주요 인사 암살을 목적으로 강릉 잠수함 무장공비 사건을 일으켜 군과 민간인 15명이 희생당했다. 98년 속초 앞바다에서 발견된 북한 잠수함에선 공작원 9명의 시신이 발견되기도 했다.

 ◆해상 도발(2000년대)

99년 6월 북한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트집 잡아 휴전 후 최초의 정규전인 1차 연평해전을 일으켰다. 1차 연평해전에서 완패한 북한은 한·일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던 2002년 6월 2차 연평해전(서해교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우리 군은 고속정 1척이 침몰되고 해군 6명이 전사했다. 이후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 2009년 2차 핵실험을 실시하며 긴장국면을 이어갔고 2009년 핵실험 직후에는 대청해전을 도발했다.

 ◆폭침·포격(2010년대)

2009년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은은 대남 도발을 통해 권력을 다져나갔다. 북한은 2010년 3월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어뢰를 통해 ‘천안함’을 폭침시켰다. 해군 40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됐다. 같은 해 11월에는 장사정포로 연평도를 포격해 해병대 2명이 전사하고 민간이 2명이 사망했다.

정원엽 기자

[관계기사]

▶ 키 리졸브 참여 美핵잠수함, 훈련 후 한반도 인근 잔류
▶ 한국, 핵 개발 않고도 북핵 억제수단 확보…한·미 윈윈
▶ 북과 관계 유지할지 포기할지…중국서 격렬한 토론
▶ 불안한 주민, 결연한 군인…북 도발 최전선 연평도의 두 장면
▶ 유엔 "한국 정전협정 아직 유효…반 총장, 北에 존중 촉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