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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재건축 꿈틀…시장 기대 크나 가격은 '약보합'

중앙선데이

입력

‘부동산 바닥론’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값이 내릴 만큼 내렸으니 이제 오를 때가 됐다는 주장이다.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값이 조금씩 들썩이고 있고, 경매시장을 찾는 발길도 조금씩 분주해지는 형국이다.

6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 4별관 201호 경매법정. 오전 10시 개정한 법정은 200명이 넘는 사람으로 붐볐다. 법정 안의 의자가 꽉 찾고 자리에 앉지 못해 서 있는 이도 20여 명이나 됐다.

지난 겨우내 얼어붙은 부동산 경매의 열기가 봄을 맞아 조금씩 살아나는 분위기다. 뒷줄에 앉아 열심히 경매정보지를 뒤적이던 최모(50)씨는 “부동산 경기가 나아지는 게 보인다”며 “아파트 거래량이 늘고 경매 낙찰가가 조금씩 오르는 걸 보면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왔다는 김모(59)씨는 “(주택 가격이) 더 떨어질 줄 알았는데 낙찰가가 (실거래가의) 80% 가까이 되는걸 보면 이제 집을 살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했다. 경매 법정 밖에는 경매전문 대출 중개업자 20여 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이들은 경매법정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경매 관련 소식지와 자신의 명함을 앞다퉈 건넸다. 12년째 경매 관련 대출업을 해왔다는 김수한(44·가명)씨는 “일단 현재는 대출금리가 낮고 새 정부 들어 (부동산 경기 상승) 기대심리도 있다”며 “지난해보다는 확실히 손님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출업자는 “전세 구하기가 어려운 마당에 차라리 경매로 싸게 집을 장만하려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전세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월세나 경매시장으로 눈길을 돌린 이가 많다는 얘기다. 이를 반영하듯 이날 경매에서 주로 낙찰된 물건은 연립이나 다세대 주택이었다.

이처럼 부동산 경매 법정 안팎 풍경만 봐선 부동산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매정보업체 부동산태인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서울ㆍ수도권 주택(아파트ㆍ단독ㆍ다가구) 경매 물건은 1만434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5% 늘었다. 새로 경매시장에 유입되는 물건이 늘어난 까닭이다. 낙찰가율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경매 물건의 평균 낙찰가율은 76.84%로 지난해 5월 이래 9개월 만에 최고치다. 입찰 경쟁률도 평균 5.54대 1로 지난해 3월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직접 경매 나서기보다 참관자가 더 많아
경매시장을 찾는 사람이 느는 건 맞지만 아직까진 직접 경매에 나서기보다 ‘참관차’ 오는 이가 더 많았다.

이날 법정에선 총 70건의 경매 아파트 중 14건에 대한 입찰이 이뤄졌다. 그러나 입찰에 참여한 이는 53명에 그쳤다. 200명 넘는 사람이 법정을 채웠던 걸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다.
이날 경매법정에서 만난 조모(73)씨는 “아직 부동산 회복세가 확실치 않은데 경매가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덜컥 물건을 잡았다가는 나중에 재산세만 물게 된다”고 말했다.
부인과 함께 법정을 찾은 김두현(45)씨는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고 해서 30평대 중후반 아파트를 알아보려고 경매법정에 오게 됐다”며 “일단은 경매학원에 다니면서 어떤 물건이 좋은 물건인지 충분히 연구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두 차례 이상 유찰된 물건에는 수십 명이 모여들기도 한다. 이날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경매매물은 서울 신당동 소재 남산타운아파트였다. 139㎡의 아파트의 당초 감정평가액은 6억8000만원이었지만 유찰이 반복되면서 최저 매각가격이 4억3520만원까지 떨어진 경우였다. 이 아파트에는 24명의 입찰자가 몰려 5억4000여만원에 낙찰됐다.

경매시장이 살아난다고 해서 전체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부동산 경매와 부동산 경기는 밀접한 관계이기는 하지만 경매시장은 전체 부동산 경기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참고가 될 뿐이지 선행지표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세 조사기관마다 현재 부동산 시장에 대한 견해도 갈린다. KB국민은행은 지난 4일 주택시장 주간동향 보고서를 내고 “아파트 매매가격은 장기간 부동산 경기침체로 인해 매수세 부진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며 “수도권(-0.1% 하락)은 거래 위축세가 심화되면서 3주 연속 하락했다”고 밝혔다. 반면 부동산 전문 사이트인 닥터아파트(www.DrApt.com)는 이달 1일부터 7일까지 아파트값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주간 매매가 변동률은 서울이 0.03% 오르고, 신도시가 0.02% 하락하면서 서울의 경우 2주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특히 재건축 대상 아파트가 많은 서울 강동구(0.1% 상승)와 강남구(0.08% 상승)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는 호가가 확실히 올랐다는 게 부동산 업계 전반의 공통된 견해다. 지난해 말 6억원 선에 거래되던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전용 42.97㎡ 기준)의 경우 현재는 6억7000만~7억원 선에서 호가가 형성돼 있다. 길음뉴타운 같은 서울시내 대단지 아파트들도 평형에 따라 지난해 말보다 1000만~2000만원가량 오른 상태다.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들과 경매시장을 중심으로 조금씩 거래가 늘고 있긴 하지만 부동산 시장 전체를 볼 땐 좀 더 판세를 살펴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박원갑(48)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부동산 바닥론은 ‘이젠 집값이 그만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반영된 표현”이라며 “지난해 하반기에도 바닥론을 믿다가 손해를 본 사람이 많은 만큼 한두 달 반짝하는 부동산 경기를 볼 게 아니라 올 한 해 전체를 기준으로 새 정부의 부동산정책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금 집 살 때” 응답자 77%
신도시의 중대형 아파트들은 지금도 극도의 매매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경기도 일산에서 공인중개소를 운영해온 김모(47)씨는 “이달 들어 아직 한 건도 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며 “최근엔 하락세가 조금 주춤한 것 같긴 한데, 거래 자체가 없으니 그나마도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평촌과 용인, 산본 등 남부권에 있는 신도시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평촌 초원마을의 한 공인중개사는 “30평대 아파트가 주력인 단지인데,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값이 빠지다 보니 새로 들어오려는 손님이 많지 않다”며 “본격적인 이사철이 되면 상황이 좀 나아질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지역의 아파트값은 지난해 말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거나 되레 내린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일반인을 중심으로 투자심리가 나아지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KB국민은행 부동산사이트(http://nland.kbstar.com)가 이달 1일부터 ‘지금이 집을 살 시점인가’를 주제로 진행 중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8일 오후 5시 현재 전체 응답자 494명 중 77%인 382명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아니오’라고 답한 이는 112명에 그쳤다.

경매법정에서 만난 김현수(38)씨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집에 대한 애착이 유별난 만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오를 것으로 본다”며 “강남구 개포주공 같은 재건축 아파트들이 꿈틀대는 것도 그런 믿음이 작용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조주현 건국대 교수는 “앞으로는 부동산 값이 등락하는 진폭이 줄고 있어 과거와 같이 대박을 꿈꾸는 것은 무리이고 부동산 시장 자체가 국내외 경제상황과 상호 연계돼 있는 만큼 섣불리 예단하기도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강신우 인턴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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