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수의 세상탐사] ‘포스트 북핵’ 전략을 세울 때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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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호 35면

북핵을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의 국제외교 전략가라는 옌쉐퉁(閻學通·61) 칭화(淸華)대 교수에게 해법을 물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닷새 앞둔 지난달 20일 방한해 ‘동북아 지역 구조의 발전 추세’를 주제로 강연을 한 뒤였다. 그는 2010년 칭화대 당대국제관계연구원을 설립해 원장직을 맡은 이후 현실주의 노선을 따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선지 작금의 한반도 정세를 “긴장상태에 놓여 있지만 전쟁 발발 위험은 없다”고 진단했다. 그를 둘러싸고 한때 중국의 새 권력자 시진핑(習近平) 당 총서기의 브레인이라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그는 “사실과 다르다”며 웃어넘겼다.

 필자가 다시 단도직입(單刀直入)으로 “당신이 한국의 대통령이라면 북핵에 어떻게 대응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옌 교수는 다른 중국 학자들의 두루뭉술한 답변과 달리 짧고도 분명하게 답했다. “한국이 북핵을 저지할 현실적인 수단이 없는데 거기에 매달린들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묵직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내가 한국 대통령이라면 ‘북핵 저지’가 아니라 ‘북핵 활용’을 고민하겠다.”

 미·중이 동아시아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요즘, 국내외 언론에선 중국의 대북 제재 동참을 변화의 기류라고 해석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이 한반도 전략을 바꾸고 있다는 희망 섞인 관측이다. 옌 교수와의 대화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는 건 그래서다.

 중국의 전략은 과연 변하고 있는가.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대북정책의 전술은 변할 수 있겠지만 전략은 요지부동이다. 북측의 ‘불바다 운운’ 협박이 연일 쏟아지는 가운데 옌 교수의 묵직한 한마디는 중국의 감춰진 속내를 은연중 말해준다. 중국은 북한의 대남 강경책과 국제사회의 제재, 그리고 중국을 향한 한국의 구애를 외교적 지렛대로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한국 다음으로 북핵 위기에 목소리를 높이는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극우세력과 함께 우경화를 주도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평화헌법 개정과 재무장의 동력을 북핵 사태에서 찾을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한 미국도 반사이익을 기대해 볼 대목이 있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수록 미사일방어(MD) 체제는 물론 미국의 존재감은 부각될 수밖에 없다. 아베 정부가 몰아붙이는 엔저 행진을 미국이 묵인하는 것도 대중 견제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 경제를 살리고 일본의 국력을 되살려 놓아야 동아시아 지역의 대중(對中) 전선이 탄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1950년대 중반 중국은 소련의 패권 아래서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총력을 기울여 원폭 실험에 성공한 건 64년 10월이다. 북한도 59년 조·소(朝蘇) 원자력협정 체결 이후 핵 보유의 꿈을 키워갔다. 그런 만큼 북한의 핵개발 역사를 몰랐다면 어불성설이다. 중국으로선 북핵 저지 능력이 없거나 그럴 의지가 취약했다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의 안보 브레인이었던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은 “북한의 핵개발이 본격화한 건 88년 무렵”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중국의 영향력에 기댄 한·미·일의 북핵 대응 기조는 발바닥이 가려운데 구두만 긁어 왔던 꼴이다.

 아무리 훌륭한 전문가라도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유명 학자나 관료·정치인들이 주창하는 위기 해법 가운데 훗날 상황이 종료되면 감정에 치우친 낙관론 또는 근거 없는 비관론이라는 게 드러나곤 한다. 베트남전쟁을 확전으로 이끈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정보 왜곡과 오판이 좋은 사례다. 북핵 사태를 보면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나 이명박 정부의 강경 압박책도 뭔가 잘못 꼬였다는 생각을 금할 길이 없다. 그렇다고 북한 핵에 맞선 ‘핵 무장론’도 화풀이용 담론이 될망정 산뜻한 해법이 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결국 북핵 문제는 돌고 돌아 한국 몫으로 돌아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기대하는 건 그 때문이다. 남북 대치가 격해질수록 대화·교류·협력의 다음 순서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도발에는 강력한 응징으로 맞서되 북한을 끌어안고 갈 비전과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북이 주먹을 내민다고 그에 맞서 주먹만 내밀다간 남북 문제의 주도권을 북핵을 활용하려는 다른 나라의 손에 넘겨줄 수 있어서다. 북한 체제와 북한 주민을 분리해 이젠 좀 더 세련된 대북정책을 펼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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