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도 폭주족 비밀도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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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4일 자정 무렵 대구시 수성구 대구스타디움 지하차도. ‘부~웅’ 하는 굉음이 들리더니 독일제 BMW 차량이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시속 80㎞로 뒤쫓았지만 BMW는 사라져 버렸다. 10분쯤 지나 반대편 차선으로 붉은색 영어 스티커로 치장한 제네시스 쿠페 두 대가 굉음을 내며 BMW와 경주하듯 지하차도를 내달렸다. 시속 180㎞ 이상은 돼 보였다. 차선을 옮기며 달리자 옆 차선에 있던 아반떼 차량이 놀라 급정거했다. 이들 차량은 30분 동안 신호등 없는 1.5㎞ 직선도로(왕복 4차로)인 이 도로를 오갔다. 시속 80㎞ 제한을 넘어섰지만 경찰은 없었다. 자동차를 개조해 속도를 즐기는 튜닝족의 폭주 장면이다.

 대구에는 이곳처럼 튜닝족이 즐겨 찾는 ‘폭주길’ 두 곳이 더 있다. 하나는 길이 16㎞(왕복 2~4차로) 내리막도로에 10여 차례 굽어 있는 ‘팔공산 길’이다. 또 1.5㎞ 도로의 왕복 8차로 중 2개의 차선을 점령해 400m 구간을 누가 빨리 달리는지 겨룰 수 있는 ‘성서공단 길’이 있다.

 튜닝족은 이들 도로를 유형별로 ‘약칭’한다. 대구스타디움 지하차도는 무한정 직진할 수 있다는 뜻으로 ‘직빨도로’, 굽은 도로를 빠르게 달릴 수 있는 팔공산은 ‘와인딩 도로’, 성서공단은 짧게 줄여 ‘공단’으로 칭한다. 2010년께 튜닝족은 이 길을 찾아왔다.

 제네시스 쿠페를 타는 강모(38·남구)씨는 “자정이 지나면 도로 3곳은 한적해진다. 대형 화물차량이 많지 않아 도로에 포트홀(움푹 파인 도로)도 없다”며 “지난해 초부터 지인들과 일주일에 한 번꼴로 ‘공단’이나 ‘직빨도로’를 찾는다”고 말했다.

 이들 도로가 폭주길로 불리게 된 것은 폐쇄회로TV(CCTV)가 없어서다. 공단 폭주길에 CCTV 두 대가 설치돼 있지만 폭주가 일어나는 곳은 CCTV와 CCTV 사이 650m여서 무용지물이다.

 경찰의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도 이유다. 대구경찰청의 자동차 폭주족 단속 현황을 확인한 결과 2011년 미확인, 지난해 4대, 올 들어 2대의 폭주 차량을 적발했다. 그러나 모두 자동차관리법 위반으로 단속한 것이다.

 외지 튜닝족도 모여든다. 네이버의 자동차 블로그엔 ‘팔공서킷’이라며 ‘팔공산 와인딩 코스’라는 제목의 지도를 소개하고 있다. 인터넷 다음의 독일산 A자동차 동호회에도 ‘서울에서 대구 왔는데 함 달려봐야죠’라며 차량을 불러모으는 글이 게시되고, 유명 B중고자동차 사이트엔 팔공산 와인딩 코스 탐방이라는 동영상까지 버젓이 올라 있다. 대구스타디움 앞에서 시속 260㎞까지 달렸다고 쓴 글도 인터넷에 보인다.

 교통량이 많지 않은 도로들이지만 사고도 잦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대구스타디움이 있는 수성구에서만 지난해 2112건의 사고가 있었다. 팔공산이 있는 동구에선 1630건, 성서공단 지역에선 1855건의 사고가 났다. 폭주길만 따로 떼어낸 통계는 없지만 인터넷에선 ‘팔공산에서 와인딩 하다 맞은편 차에 부딪혔다’ ‘대구스타디움 앞 도로에서 차량 전복 사고가 있었다’는 글 등을 찾을 수 있다.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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