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기업 압박으로 비정규직 해소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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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마트가 상품 진열 등을 하는 하도급 회사 직원 1만여 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에 앞서 고용노동부는 이마트가 1978명 근로자의 불법 파견을 적발하고, 이들을 직접 고용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이번에 정규직으로 신분이 바뀌는 직원들은 정년을 보장받게 된다. 임금도 평균 27% 오른다. 이마트로선 연간 600억원의 인건비를 더 부담하게 되지만, 고용 안정성만 따지면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다. 사회 양극화를 완화시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대기업을 압박해 정규직 전환을 강요하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비정규직(계약직·파견직·임시직 등)은 전체 근로자의 33.3%인 591만 명에 이른다. 그 속을 뜯어보면 정작 대기업인 10대 그룹의 비정규직은 3만5000여 명으로 6.2%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도마에 오르는 현대차그룹의 경우 실제로는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이 2.6%로 가장 낮은 편이다. 우리 사회의 인식과 현실의 괴리가 그만큼 큰 것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를 풀려면 비정규직의 90% 이상이 일하고 있는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이 훨씬 중요하다. 대기업 압박으로 해결하기는 현실적 한계가 너무 뚜렷하다.

 비정규직 문제는 양날의 칼이다. 무리하게 고용 안정성에 집착하면 기업들은 고용을 꺼리거나 해외로 빠져나가고 중소기업들부터 경영난에 빠지게 된다. 비정규직 해소에는 고용 안정성과 고용 유연성 사이의 절묘한 균형이 필요하다. 무턱대고 기업들에 정규직화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떠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규직 노조의 양보를 통한 노사 간의 고통 분담이 전제돼야 근본적인 해결을 도모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걸어가야 할 길은 당연히 정규직을 늘리고 비정규직은 줄이는 쪽이다. 하지만 풍선효과의 부작용을 기억해야 한다. 2007년 비정규직보호법이 도입됐지만 대부분 2년 안에 해고하는 편법만 기승을 부려 기업과 비정규직 양쪽에 불편만 가중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