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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바람이 거의 다 빠져서 물렁물렁해진 장난감 공이 벌써 서너달째 집안을 굴러다니고 있다. 이름해서 「Voctory 3」그「3」자가 무슨 소리인진 알 수 없으나 「복도리」의 유래만은 대략 짐작이 간다. 그러나 여간해서 죽지 않고 사라지기조차 않는 끈덕진 상혼은 그 바로 밑에 다음과 같은 주석을 덧붙이게 했다. 왈「Official 시합구」. 이게 도시 무슨 영문일까. 판잣집 문방구가게에서 대여섯살 먹은 개구쟁이들에게 팔리는 공이 「오피셜 시합구」라고 주장하는 것부터 수상하지만, 그 모든 주장을 꼬부랑 글자로 박아 놓아야 직성이 풀린다면 좀 우습지 않은가. 그런 꼬부랑 글자일수록 자세히 보면 엉터리이기 일쑤여서 더욱 그렇다. 「복도리」같이 말이다.
시장에 가서 소위 양품이나 식료품이 진열되어 있는 곳에서 발을 멈추고 포장지나 용기에 번드르르하게 그려져 있는 꼬부랑 글자의 행열을 자세히 검토하면 뜻하지 않은 외국어공부가 될 수 있다. 제대로 돼서 뜻이 있는 표기와, 철자나 어법이 엉터리여서 그 뜻을 짐작할 따름이거나, 아무리 궁리해도 무슨 소리인지 헤아릴 도리가 없는 것을 골라 보면 전자보다 후자의 예가 한결 많기 마련. 「복도리」는 차라리 약과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국산품을 외래품인양 팔아먹자는 숨길 수 없는 양심의 소치. 그것이 어쩌다 외국시장이나 전시장에 나타났을 때 국위가 입는 손상이 막대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한반도를 떠날 가능성이 전무한 것에다가, 애초부터 외국명칭을 붙여 부르는 풍습이 차차 고질화하여 가고 있다. 두드러진 예는 「호텔」이름들.
한국식 이름으로 부르던 것을 굳이 영어명으로 고쳐 부르게된 것도 있다. 관광객과 외자0획득을 노리는 「호텔」을 모조리 영어식으로 불러야 한다면, 「반도」와「조선」도 개명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와 같은 풍습은 상식 밖의 일. 원로 한국을 찾아와서 제고장의 유행가만 듣다 돌아가는 미국관광객이 느낄 허무감을 생각해 보라. 외인일수록 어엿한 한국어로 대해야 한다.「호텔」이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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