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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중독 사이코’役 대중·평단 사로잡은 22세 무서운 풋내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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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P=뉴시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열린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최고 스타는 단연 제니퍼 로런스였다. 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남우주연상은 모두가 예상한 바였다. 앤 해서웨이의 여우조연상 역시 너무 당연해 식상함마저 들었다. 그러나 올해 고작 만 22살인 이 여배우의 이름이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되는 순간 시상식이 열렸던 할리우드 돌비 시어터엔 “와!” 하는 함성이 터졌다. 아직 풋내조차 완전히 가시지 않은 그녀에게 ‘떠오르는 스타’란 이름 대신 ‘최고의 여배우’란 타이틀이 수여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이번 시상식의 완벽한 ‘신 스틸러’였다. 레드 카펫 위에서는 우아한 디올 드레스로 구글 실시간 검색어 1위, 트위터 멘션 23만4357건을 기록하며 대중의 눈을 사로잡았다. 여우주연상이 호명된 순간에는 기쁨에 겨워 서둘러 무대 위로 오르다가 치마 자락을 밟고 넘어지며 ‘꽈당녀’가 돼 그날의 최고 이슈거리가 됐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어나 생글거리며 당당히 수상소감을 밝히고 쿨하게 내려왔다.

수상 직후 무대 뒤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그녀는 최고 인기였다. 질문을 하기 위해 번호표를 흔드는 기자들에게 “지금 제 상 뺏어가려고 경매하시나요?”라며 농담까지 던졌다. 유머 감각은 할리우드 맛을 제대로 본 지 고작 4년 차인 신예의 수준이 아니었다.

누군가 “아까 넘어진 것 말인데…”라며 질문을 시작하자 “일부러 그랬느냐고요? 당연하죠”라고 재치 있게 응대했다. “어쩌다 넘어졌느냐”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는 짓궂은 질문이 이어져도 “절 좀 보세요. 이런 드레스를 입고 있잖아요”라든가 “여기서 밝힐 수 없는 F로 시작되는 나쁜 말을 떠올렸어요”라며 분위기를 완전히 리드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가는 그녀의 등 뒤로 300여 명의 기자들이 힘찬 박수를 보낸 것은 물론이었다. 할리우드의 본격적인 ‘제니퍼 로런스 앓이’가 시작되는 듯했다.

로런스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작품은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이다. 그녀가 연기한 주인공 티파니 역은 그야말로 시한폭탄이다. 섹스중독에 빽빽 악을 쓰며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는 게 일이다. 그런데도 어쩐지 사랑스럽고 마음이 간다. 가끔씩 비치는 쓸쓸함과 그 속에 감춰진 상처가 녹아나서다. 90년생 여배우에게서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연기며 감정이다.

사실 제니퍼 로런스는 이미 2년 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인디 영화 ‘윈터스 본’을 통해서다. 할리우드 신고식을 치르자마자 아카데미행이었으니 그녀의 재능이 짐작 가는 대목이다. 이후 2년간 그녀는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작품에 연이어 출연했고 ‘엑스멘: 퍼스트 클래스’와 ‘헝거 게임’ 같은 대작에도 호기롭게 도전했다. 그 사이 그녀는 단 한 번도 대중과 평단을 실망시킨 적이 없다.

앞길도 탄탄하다. ‘헝거 게임’과 ‘엑스맨’ 시퀄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고,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의 파트너 브래들리 쿠퍼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 시대극 ‘세레나’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아카데미 수상의 기쁨에만 취해 있지도 않는다. 시상식 다음날 바로 머리를 검게 염색했다. 곧바로 ‘헝거 게임’ 촬영 모드에 돌입한 거다.

시상식 인터뷰에서 누군가 “너무 일찍 성공한 것 같아 두렵지 않느냐”는 돌직구 질문을 던지자 “조금은요. 하지만 두고 보죠”라며 기죽지 않는 모습을 보인 그녀다. 언젠가는 이런 말도 했다. “갑자기 너무 좋은 기회가 오면 당연히 겁이 나죠. 하지만 회사에서 뜻밖에 승진하게 됐을 때 ‘준비가 안 됐으니 다음에 승진할게요’ 하진 않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이 발칙하고 당당하며 솔직한 자세야말로 제니퍼 로런스가 아직 보여줄 게 더 많은 배우라는 증거일지 모른다. 스물둘 제니퍼 로런스의 배우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할리우드 돌비 시어터 글 이경민 LA중앙일보 기자 rache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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