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애국심을 이용한 판매 전략은 위험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작금의 대한민국은 경제 규모로는 세계 15위, 무역 규모로는 세계 8위의 경제강국이다. 이는 우리가 좁은 한반도에서 벗어나 세계시장을 향해 진출하고, 우리 시장을 여는 등 개방적이고 세계화된 시각과 실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경제적 지위를 유지·발전하는 데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적(敵)이 있다면 ‘국수주의적 사고와 행태’다. 이런 점에서 최근 자영업자들이 대대적으로 결의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한국의 시장 건전화와 경쟁력의 측면에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이번 불매운동은 일본의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반발한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 등 80여 개 직능단체와 60여 개 소상공인·자영업단체가 앞장서 일본산 제품을 판매하지 않기로 결의하며 시작됐다. 그동안 시민단체 중심의 불매운동은 종종 있었지만, 상인들이 직접 대거 불매운동을 벌이는 건 드문 경우다. 그들은 애국심을 주장하지만, 시장은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야 발전하고 풍요로워진다. 상인들이 시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은 스스로 불신을 초래하고 시장 자체를 축소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특히 이번 불매운동을 ‘제2의 물산장려운동’이라고 주장한다. 물산장려운동은 90여 년 전 우리 산업자본이 황폐했던 일제시대에 국산품을 애용함으로써 민족자본을 형성해 경제적으로 자립하자며 일어난 운동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강국이다. 이런 시장에서 민족주의·국수주의 운동이 일어난다면 세계 시장이 등을 돌린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경제 기반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사례만 보아도 불매운동의 후유증은 심각하다. 중국은 지난해 센카쿠 갈등 이후 대규모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벌인 결과 일본산의 중국 판매가 급격히 줄고, 일본은 대규모의 대중국 적자를 냈다. 이에 일본 측도 중국산 수입을 줄이고, 대중국 투자금을 다른 나라로 돌려 중국 역시 만만찮은 피해를 보았다. 일본을 이기는 길은 일본산을 안 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잘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