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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중앙시평

취임식장에 놓인 위기와 선택의 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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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오늘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에 북핵 문제 이상의 다급한 당면과제는 없을 것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추가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하는 대로 북한은 4차 핵실험과 미사일 추가 발사, 심지어 국지도발까지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평화와 안보의 위기가 목전에 와 있는데 뚜렷한 대안은 없어 보인다.

 먼저 이른바 선제타격론부터 살펴보자. “북한이 핵을 사용한다는 임박한 징후가 있으면 선제타격을 할 것”이라는 정승조 합참의장의 국회 발언이 대표적일 것이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발사한다면 이는 곧 국가 파멸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군사적 대응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북한의 핵 사용이 임박했다는 결정적 징후를 우리가 무슨 수로 판단할 수 있을까? 단지 막연한 불안감으로 예방 차원의 군사행동을 한다면 원치 않는 전면전이 발생하고 국제법적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사실 지하 깊숙이 은닉된 북한의 최신 단거리 미사일들은 고체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발사 징후를 포착하기 어렵다. 100여 기의 이동식 발사대는 또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특히 선제타격을 가하는 순간, 휴전선 전방에 대규모로 전진배치된 북의 장사정포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드는 상황전개는 피할 수 없다. 더욱이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전까지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선제타격을 결정해 실행하기도 어렵다.

 둘째는 핵 억지론이다. 선제타격이 어렵다면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하거나 독자적인 핵무장을 통해 대북 핵 억지력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미국의 핵우산 공여와 재래식 군사력의 억지 기능에 대한 의구심이 깊게 깔려 있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도 핵무기를 보유하는데도 별 탈 없지 않으냐’ ‘민주국가인 한국이 자위권 차원에서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문제될 게 없다’는 정서도 한몫을 차지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선 미국이 전술핵을 한반도에 재배치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표방하며 전술핵 전량 파기를 공언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에 한국만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진 탄도미사일(SLBM), 전략 폭격기를 통해 북한에 대한 핵 억지력은 충분하다고 믿는 워싱턴이, 심지어 한·미연합군의 재래식 전력만으로도 북한 비대칭 위협을 억지할 수 있다고 믿는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이, 유지도 관리도 어려운 전술핵 재배치 카드를 뽑아들 가능성은 극히 적다.

 독자적 핵무장론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후의 시나리오는 우리에게는 최악일 수밖에 없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한·미 원자력협정 파기를 전제로 하는 독자적 핵무장은 우선 한국 원자력 산업의 전면 중단으로 직결된다. 원료 확보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견제심리 때문에라도 미국이 이를 용인할 것이라는 기대 역시 현실성이 별로 없다. 핵을 가진 한국이 미국의 말을 들을 리 없다는 게 워싱턴의 시각이고 보면 이는 자칫 한·미 동맹을 파탄지경으로 만들 게 뻔하다. 한국의 고립과 미국의 방기, 이것이야말로 평양이 노리는 최상의 결과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강력한 대북제재를 통한 ‘레짐 체인지’를 들 수 있다. 김정은 ‘선군’ 체제가 무너져야 북핵 문제가 영구적으로 해결될 수 있으므로 국제공조를 통한 고강도 ‘망라형’ 대북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에 올인하는 이유가 무언가. 바로 체제안보 때문이다. 체제에 대한 위협을 가할수록 핵무기에 대한 평양의 집착은 심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재가 협상재개를 위한 압박 수단이 아니라 체제붕괴를 노린 포석이라고 기정사실화되는 순간 북핵 문제의 해결은 훨씬 더 요원해진다.

 물론 국가의 안위와 존망이 걸린 지금은 모든 대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때다. 그러나 순간의 선택으로 운명 자체가 갈라질 결정적인 국면이기도 하다. 잘못된 판단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기정사실화하고 동맹의 파탄은 물론 전쟁의 개연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일본의 핵무장과 군사대국화 명분을 제공하는 끔찍한 귀결로 이어질 수 있다. 국민의 행복과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도박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위기가 심화한 만큼 대통령이 공약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대화와 협상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 정부의 냉철한 위협 평가와 지혜로운 정책 대응, 과감한 정치적 결단력에 한반도의 미래가 달려 있음을 취임식장의 박 대통령이 잊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문 정 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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