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거대한 형이상학적 질문 표현주의 대가 키퍼展

중앙일보

입력

"상징적이며 신비하고 종교적이다.""작품의 뜻은 잘 모르겠지만 존재를 압도하는 장엄한 힘을 느낀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안젤름 키퍼'전을 찾은 관객들은 "세계적인 대가라더니 역시 대단하다"고 입을 모은다.

갤러리에선 '조지프 보이스 이후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로 꼽히는 키퍼의 설치 1점과 조각 5점, 대형 회화 8점, 사진 콜라주 12점 등 26점을 전시 중이다 (내년 1월 27일까지) .

독일 표현주의(객관적 사실보다 사물에 대한 주관적인 감정표현에 중점을 두는 미술사조) 전통을 계승한 키퍼(56) 는 1970년대부터 유대인의 역사와 나치 정권을 소재로 한 작품을 발표해왔다.

81년에 39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독일 대표작가로 참가해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91년 통독과 함께 독일을 영원히 떠나 프랑스로 이주했다.

독일을 중심주제로 하던 그의 작업은 95년 이후 종교.신화.철학적으로 더욱 넓어지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는 고대 이집트 신화, 중세의 연금술, 근현대 중국사까지 아우르며 인간과 종교, 문명의 원초적인 문제를 파고든다.

재료로는 캔버스와 오일 외에 사진.재.지푸라기.역청.머리카락.고사리.해바라기 씨.재를 뿌린 옷가지 등의 다양한 오브제를 사용해 조각과 회화.설치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전시작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본관에 전시된 5.6m 높이의 설치회화 '태초의 폭발'. 중세 유대교의 신비론적 분파인 '카발라'교리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신성한 빛을 담았던 항아리들이 깨진 채 매달려 있는 화면 중앙에는 신이 있던 자리가 핏자국처럼 남아 있다. 혼돈 속에서 부서진 용기들을 복원해 질서를 회복하고 구원하는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른 작품들은 모두 갤러리가 이번에 신축한 전시면적 1백20평의 신관에서 전시 중이다. '탄호이저'는 납으로 만든 14권의 책자가 말라죽은 가시덩굴에 덮여 있는 조각으로 을씨년스러우면서도 장엄한 느낌을 준다.

8.8m 길이의 회화 '식물의 정신세계'는 우주에 펼쳐진 별자리의 궤적을 따라 만발한 꽃과 가지가 무수히 수놓인 작품으로 우주와 생명의 신비를 담았다. 6m가 넘는 회화 '백화제방(百花齊放) '은 양귀비가 가득 피어 있는 광활한 풍경 위쪽에 마오쩌둥(毛澤東) 이 한손을 들고 있어 이채롭다. 반대세력 탄압에 이용된 백화제방 운동을 비판한 작품.

비평가 로버트 휴가 "그의 세대에서 미국.유럽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화가"라고 극찬했던 키퍼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는 대작들이다.

키퍼 자신은 한 인터뷰에서 "나는'내가 이것을 창조했다' 또는 '무(無) 로부터 만들어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 작업은 나로부터 분리될 수 없지만 동시에 그것은 하나의 수수께끼같은 어떤 것"이라고 설명했다.

키퍼의 국내전은 95년 국제갤러리 이래 이번이 두번째. 97년 외환위기로 무산됐던 전시가 4년 만에 결실을 본 것.

노재령 큐레이터는 "키퍼의 신작을 직접 공급받는 화랑은 세계에서 세곳 뿐이고 아시아에선 국제가 유일하다"고 강조하고 "작가가 아트페어나 경매에는 작품이 유출되는 것을 극력 저지하기 때문에 이번에 그의 신작을 대대적으로 전시할 수 있는 것은 큰 성과"라고 말했다. 입장료 4천원.

02-735-8449.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