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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연재하는 윤대현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강남 사느라 힘드시죠 … 제게 털어놓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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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면

윤대현(45)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성공했다는 유명인을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 중 하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의 오너, 상상을 초월하는 부자, 사회적 지위가 높은 권력자, 인기 절정을 누리는 연예인과 그 가족, 여기에 전문직과 졸부까지-. 다양한 인물이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 39층에 있는 그의 ‘멘털 피트니스’ 진료실을 찾는다. 진료센터 위치가 위치인 만큼 강남 사람이 많다.

연재하는 윤대현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세속적 잣대로만 보면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잘나가는 명사들이 윤 교수를 찾는 이유는 자기 속내를 털어놓기 위해서다. 그리고 위로받기 위해서다. 다른 정신과 의사들처럼 윤 교수도 때론 약물치료를 병행하긴 하지만 그는 주로 듣는다. 또 다른 정신과 의사들이 과거 경험이 남긴 트라우마(상처)든 뭐든 환자의 문제가 뭔지 찾아내려 골몰할 때 윤 교수는 오히려 그를 찾은 이에게 “지금 겪는 문제는 당신 때문이 아니다”며 “당신을 옥죄는 사회적 프레임(틀)에서 벗어나라”고 얘기해 준다.

 윤 교수는 ‘정신과’라는 단어 대신 ‘스트레스 클리닉’이라고 표현한다. 스트레스 푸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를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다. 이런 마음 씀씀이가 통한 것일까. 아니면 세파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늘어난 걸까. 아무튼 서울대 강남센터의 유일한 정신과 클리닉인 멘털 피트니스실을 찾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격주로 토요일에도 멘털 피트니스 문을 연다.

 윤 교수에게 그의 멘털 피트니스를 찾지 못하는 독자를 위해 글을 부탁했다. 흔쾌히 응했다. 그러나 인터뷰는 한사코 꺼렸다. “진료실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인상도 주지 않는 흰 도화지여야 한다”는 이유였다. 설득 끝에 그와 마주 앉았다. 당신의 경험이 그의 글을 읽는 독자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마지못해 그도 동의했다. “어쩌면 강남 출신으로 강남에서 사는 내 모습이 나를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건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약속 장소는 대개 압구정동이나 청담동”이라며 “비슷한 ‘물’에서 그들이 겪는 쾌락과 허무를 똑같이 느끼다 보니 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는 하다”고도 했다.

 그렇다. 그는 원조 대치동 키즈다. 윤 교수는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79년 대치동에 입성했다. 결혼 즈음인 스물일곱 살 때 부친의 사업 실패로 강남을 떠나 분당에 자리 잡았다가 올해 휘문고 2학년에 올라가는 외아들 교육을 위해 아들이 중학교에 진학하던 2008년 대치동으로 컴백한 대치동 아빠이기도 하다. 강남의 삶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는 또 생활반경이 웬만하면 강남을 벗어나지 않는다. ‘아침마당’(KBS) 등 방송 출연을 위해 여의도로 갈 때나 필동면옥 냉면 맛을 보려고 주말에 가족 나들이를 할 때 등을 제외하고는 그의 활동 대부분은 강남에서 이뤄진다. 친한 고교 동창도 대부분 강남에 산다.

 그가 성북구 장위동에서 대치동으로 이사했을 때는 대치동과 압구정동 등에 처음으로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막 들어서던 때다. 윤 교수는 학교는 대치동 인근 언주국민학교를 다녔지만 학원은 압구정동 현대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격세지감이라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하여간 지금은 압구정동에서도 대치동으로 학원 원정을 가는 시대 아닌가.

 “학업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심한 경우 자살하는 사람까지 만나봤다”며 왜 사교육 왕국 대치동으로 돌아갔느냐고 물었다. 그는 “분당에서는 학원 데리고 다니기 어렵더라”며 “내가 편한 거에다 애한테 해 줄 수 있는 건 다 해 주자는 두 가지 심리가 작동했다”고 말했다.

 “솔직히 대치동, 나쁜 것 같다. 살기 좋은 동네라는 느낌은 없다. 문화적인 게 하나도 없다. 저절로 애 공부를 잘하게 해 주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런데 어쨌든 돌아오니 고향에 온 느낌도 있었다. 분당은 불편했거든. 특히 애한테 나중에 ‘대치동 못 살아서 좋은 대학 못 갔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다. 어쨌든 대치동 입성은 대학 가는 해법 중 하나, 부모로서의 기본이란 인식이 있으니까.”

 윤 교수 아들은 처음엔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학업도 헤매더란다. 그는 그런 아들을 위해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이후로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매주 꼭 한 번씩 아들과 둘만의 회식을 한다. 주로 로바다야키나 생맥줏집이다. 같이 술을 마신다. 그리고 얘기한다. 아니, 듣는다. 가끔 한 잔씩 술을 권하기도 한다. 참 특이한 아빠다. 나름 이유가 있다. 아들과 친구가 돼야 한다는 그의 교육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다.

 윤 교수는 “아빠든 엄마든 자녀는 부모의 가장 친한 친구가 돼야 하는데 이 관계를 놓치면 두고두고 부모가 힘들다”고 했다.

 “잔소리는 하는 사람 입장에선 사랑인데 결국은 해악만 끼친다. 학원 가라, 공부하라 말보다 자녀와 친해지는 게 아이의 중·고교 시절 더 시급한 문제다. 아이 입장도 그렇지만 특히 부모가 더 절실하다. 사람이 늙을수록 젊은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친구 1순위가 아빠 입장에선 바로 아들(딸)이다. 아이가 아빠를 아빠로 인정하는 게 100억원짜리 빌딩 이상의 가치가 있다. 100세 시대에 ‘정서 자원’을 확보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 아이의 중·고교 시절에 이 관계를 놓치면 평생 불가능하다.”

 윤 교수는 이 관계를 휘어잡았을까. 일단 지금은 그렇게 보인다. 아들은 하루에 세 번씩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고 한다. 무슨 의무사항이 아니다. 친구로서 거는 전화다. 시시콜콜 시험 걱정, 여자친구 문제를 털어놓는다고 한다. 성적도 공부 잘하는 학생들 모아 놓은 자율고 휘문고에서 뒤처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윤 교수는 “강남사람들을 만나보니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주변 신경을 너무 쓰는 바람에 자기 문제를 털어놓지 못하더라”며 “요즘 특히 중요성을 더해 가는 감성 소통이라는 면에서 사람이 좀 소탈해져야 하는데 고민이 있어도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 어려운 모양”이라고 했다.

 분명 고민은 있는데 터놓을 데가 없는 사람을 위해 그가 매주 한 차례 이 지면으로 찾아온다. 잘들 활용하시길

글=안혜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아래 이메일 주소로 고민을 보내주세요. 윤대현 교수가 지면을 통해 상담해 드립니다. (yoon.snuh@gmail.com)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국자살예방협회 대외협력위원장
저서 『나는 초콜릿과 이별중이다』『마음 아프지 마』 등
1981년 언주초 졸
1984년 영동중 졸
1987년 휘문고 졸
1993년 서울대 의과대학 졸업
2005년~ 서울대 교수

사는 곳: 대치동 (2008년~)
근무하는 곳: 역삼동 강남파이낸스빌딩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운동하는 곳: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
장 보기: 현대백화점 e-수퍼(온라인 매장)
가족: 맞벌이 아내와 1남
자주 가는 식당: 도산대로 4거리 가포(gappo) 음식점 ‘요꼬모리’

자녀
아들: 분당 이매중→역삼중→휘문고 2학년
주 1회 로바다야키·호프집 등에서
부자만의 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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